2022년 8월 25일 목요일

조선시대 선조대왕 때 일어난 실화/전생담

 조선시대 선조대왕 때 일어난 실화


조선시대 선조대왕 때 일어난 실화입니다. 선조대왕은 임진왜란(1592~1598년)이 일어났던 그 당시를 살았던 왕입니다. 선조대왕은 덕이 있는 대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서도 명군으로 기록됩니다. 상당히 덕이 있고, 지혜도 있는 명군으로 인정해 주는데, 그 당시 동인·서인이라고 하는 당쟁(黨爭)이 심한 때인지라 어진 정치를 펼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전라도 진도 군수로 발령을 받아 부임해 간 ‵이응′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외자이지요. 이분은 대단히 선정(善政)을 베풀었습니다. 어느 날 일본 선박 한 척이 조선의 수군에게 나포(拿捕)되었어요. 조선의 관리들이 그 선박 속의 일본 사람들을 묶어가지고 데려왔어요. 그런데 진도 관아의 아전들은 일본 선박 뱃사공들의 수괴(수장)를 죽이려고 해요. 이 사람만은 죽여야 된다 그거요. 말도 통하지 않고, 왜 우리나라에 왔느냐 그거요.

‘이건 필시 무슨 뜻이 있다. 스파이가 아니냐. 이 못된 놈들. 이 중에서 한 놈은 죽여야 된다’

하면서 참수(斬首)할 찰나입니다. 진도군수 ‵이응′이 그 사실을 보고 받고 곧 명령을 내렸어요.

‘절대로 참수하지 마라. 심한 풍랑이나 태풍을 만나가지고 불시에 기착했을 것이다. 죽이지 마라. 내가 지령한다.’

하고 명령했습니다. 그런 후에 오히려 10일 동안 융숭한 대접을 해서 일본으로 돌려보냈답니다. 진도군수 ‵이응′에게는 ‵창해′라고 하는 손자가 있었어요. ‵창해′는 머리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기골이 남자답고, 지혜 총명하고, 빼어난 용모를 갖추었답니다. 어느 날 ‵창해′라는 분이 제주도 목사로 발령을 받아 관속 20여명을 거느리고 부임하는 길에 태풍을 만나 조난을 당하여 ‵이 창해′등 관속 3사람만이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한참을 표류하다가 ‵지마도′라고 하는 일본 땅에 기착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일본 섬의 도주(島主, 섬을 다스리는 어른)앞에 끌려가 가지고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했지만, 도주가 볼 때는 죄인(스파이)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날 자기들처럼 한때 조난을 당하여 조선의 진도 땅으로 표류해서 그렇게 고생을 한 사람들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도주가 바로 진도군수 ‵이응′이 살려 보낸 일본 선박의 수장이었습니다. 그 도주가‘너희들 ‵이응′이라는 사람을 아느냐?’라고 묻더랍니다. ‵이응′이 누구죠? 진도군수로 살았던 ‵창해′의 할아버지이지요. 그러니까 ‵창해′라는 사람이‘우리 할아버지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도주는 너무도 반가워하며 융숭한 대접을 합니다. 그 창해라는 사람이 머리도 총명하고, 용모도 잘생기고, 남자답고 하니까 도주가 정을 붙입니다.

도주는 아들이 없고 딸만 하나 있었습니다. 가끔은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시키다가, 차츰 상당한 어느 직책을 맡겨봅니다. 맡기는 쪽쪽 착실하게 일을 잘 처리했답니다. 그러니까 도주의 눈에 들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창해′를 불러가지고‘우리 딸하고 네가 평생 가약을 맺고 살아라. 부부인연을 맺고 살아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는 적어도 300~400년 전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민주사회는 아니었습니다. 그 섬의 도주이면 그 섬에서는 완전히 삼권을 쥐고 있는 거요. 그런데 ‵이창해′는 그 당시 나이가 아마 30세 정도 되었습니다. 일찍이 12살 때 18살 처녀와 결혼해 가지고 살다가 19살 때 상처(喪妻)했어요. 일본여인들은 일반적으로 남편을 대단히 공경하고 예절이 분명해요. ‵이창해′는 도주의 딸과 결혼을 하여 사는데 이름도 성도 바꿉니다. ‵창해′는 놔두고 그 도주의 성을 따서 ‵모찌모또 창해′가 되었어요. 나중에는 도주가 모든 도의 정사(政事)를 ‵창해′한테 맡겨 버립니다. 그래서 30년을 삽니다. 슬하에는 아들 딸 12명의 자녀를 두었답니다. 그 중 큰아들 이름이   ‵의충′이었어요. ‵의충′은 자기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닮아가지고 도량이 넓고, 잘생기고, 아주 용맹스러웠어요.

이렇게 30년이 흘러갔습니다. 한편 고국에서는, ‵창해′어머니가 오씨인데 강원도 고성사람이어. 불교 신자였는데 관음 행자(관음 신자)였습니다. 자기 아들 제주 목사   ‵창해′일행이 바다를 건너다가 조난을 당했다는 비보를 듣고 실신했어요. 그래서 가까운 낙산사를 다니면서 아들 명복을 비는 것이 일과가 되고 습관이 되었답니다. 강원도 양양 낙산사는 지금도 유명한 곳이죠.

낙산사를 다니면서 아들이 조난당한 그날을 기일로 꼭 알고 해마다 천도재를 모십니다. 30년이 흘렀습니다. ‵창해′의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창해′의 어머니 곁에는 ‵남향′이라는 ‵창해′의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돌아가시면서 ‵남향′을 불러놓고 유언을 하기를‘너의 형이 떠난 날(조난당한 날)이 아무 달 아무 날이니까 이날만은 반드시 낙산사에 가서 천도를 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창해′의 어머니가 신심이 있는 분이었어요.

고국에서는 그랬고, 일본에서의 창해는 이제 아들도 그렇게 많이 낳았고, 또 자기 아들이 대단히 남자답고 지성스럽고 일처리도 잘하기 때문에 모든 정사를 아들한테 물려주었습니다. ‵창해′가 하는 것이라고는 날마다 낚시질이나 하면서 소일 했답니다. 하루는 바다에 나가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일진광풍이 일더니 무서운 파도가 ‵창해′의 낚시 배를 휘몰아 이끌고 어디로 달려가 버렸습니다. 어디에 도착했느냐하면 강원도 통천에 도착했답니다. 기절을 했다가 깨어나 눈을 떠보니까 조선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어요. 고국의 사람들이어요. 낯익은 땅이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이 얼마나 먼 바다 거리입니까. 자기가 승선했던 배는 낚시 배였는데 옷만 좀 적셨더라 그거요. 정신을 수습해서 물어보니까 강원도 통천이라는 거요. 그렇다면 낙산사가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도 낙산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또 자기 있는 곳에서 가까우니까‘낙산사를 한번 구경해 보자. 가서 부처님께 기도나 올리자’하며 낙산사에 가서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기 동생을 만납니다.

그날이 자기가 조난당했던 날인지 동생 ‵남향′이 천도재를 마치고 귀가하는 중이었고, 형 ‵창해′도 낙산사에서 기도를 마치고 낙사사를 구경하면서 나오는 중이었는데 뜻밖에 동생을 만났어. 마주쳤는데 30~40년의 세월이 흐르다가 보니 동생(남향)이 형(창해)을 못 알아 봤습니다. 그런데 일본 복장을 한 남자가 지나가니까 동생이‘참 묘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다가가 묻습니다.

‘당신 일본 사람이오, 조선사람이오’라고 하니까 ‵창해′가‘사실 나는 조선 사람입니다.’‵남향′이‘그러면 당신이 혹시 ‵창해′가 아닙니까’라고 물었어. 30~40년 흘렀다고 해도 동생을 몰라보겠습니까? 알 수 있지요. 그래가지고 서로를 알아보고‘아이구 형님!’하면서 붙들고 뒹굴고 얼싸안고 울었다는 거요. 고국에 계시는 부모와 조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통곡을 했답니다. 이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이렇게 인과는 분명한 것입니다. 표류하던 일본인 도주(島主)에 대하여 자기 할아버지가 따뜻하고 융숭하게 대접해서 돌려보냈기 때문에 손자인 ‵창해′도 뜻밖의 태풍으로 인한 조난을 당해가지고 일본 지마도 땅에서 그 도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도주의 사위가 되고 한 그 결과는 인과의 선인선과인 것입니다. 인연의 도리인 거요. 왜 하필 조선 땅으로 태풍이 몰아쳐 버렸어. 인연의 도리인 거요.

그래서 모든 인간사는 하나님이 만들고 하나님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전생에 사람을 죽였다? 반드시 죽입니다. 눈을 떠서 보니까 반드시 인과가 있어요. 하나님은 없어. 붓다까지 올라가서 보니까 절대로 하나님은 없어. 이 법계의 주인은 없어. 그러나 다만 부처님은 계셔. 왜? 부처님은 본래 중생으로 해서 수행을 했거든요. 여러분들도 모두 다 붓다가 될 수 있습니다.


출처/현지사 2009. 02. 17. 화(음1.23) 자재 만현 큰스님 부산 법문중 발췌

현지사에 와서야 알게 된 불교, 그리고 진정한 가르침/가피담

조선조 제22대 정조대왕 때의 이야기/전생담

 조선조 제22대 정조대왕 때의 이야기


조선조 제22대 정조대왕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씨 조선 제22대가 정조왕인데, 그 정조대왕 때의 일입니다. 정조대왕이 후사(後嗣)가 없었어요. 아드님(원자, 세자)이 없었어. 그래서 이 분이 항상 아드님 갖기를 원했습니다. 하루는 우리나라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미복(微服)을 하고 민정을 나갔습니다. 왕의 복장이 아닌 보통사람들 옷으로 갈아입고 내관 한 사람을 대동하여 밤늦게 까지 서울 장안을 주~욱 돌아다니면서 살피다가 남산을 올라갔답니다.

남산에서 보니까 바로 앞 초가삼간집에서 서기광명(瑞氣光明)이 뿜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정조대왕이 볼 때에 무지개 색깔 비슷한 서기(瑞氣)가 뻗쳐있어요. 그래서 예삿일이 아니다 해가지고 내관을 시켜서 ‘그 초가삼간을 방문하도록 하고, 그리고 그 서기(瑞氣)가 뻗친 그 방에 누가 머물고 있는 가를 알아보고 오너라’ 했더니, 내관이 살펴보고 와서 아뢰기를 ‘대구 동화사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용파'라는 스님이 한양에 올라와서 그 집주인이 신도였든지 방 하나를 얻어서 주무시고 있습니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왕이 그 스님을 불렀습니다.

그 스님을 딱 보니까 한 눈에 ‘아! 큰스님이구나.’ 할 정도로 기품이 당당하고, 눈이 공부한 맑은 눈이었습니다. 그리해서 그 스님에게 ‘아무 날 입궐을 해서 나를 찾아라’ 하고 입궐하도록 했어요. 그 스님이 무슨 일인가 하고 약조한 날짜에 입궐을 해서 왕을 배알(拜謁)하게 되었어요. 왕이 ‘내가 후사가 없으니까 고민이다. 후사가 없으면 안 되니까 당신의 법력으로 내 고민을 풀어 줄 수 없겠소?’ 하니까, '용파'스님이 자기의 능력 가지고는 안 되겠어. 그런데 자기가 잘 아는 큰스님이 있었어요.

그 큰스님 법명이 '농산'이어. '농산'이라고 하는 큰스님을 자기가 잘 알고 있어. 그래서 왕한테 말씀드리기를 ‘제가 이것을 숙제로 알고, 저에게는 도반이 있는데 나보다도 법력이 출중하니까 만나서 상의를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농산'스님은 그때 한양 장안의 '금선암'이라고 하는 암자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어요. 이 '농산'이라고 하는 큰스님은 어떤 분이냐? 금강산 '만행암'에서 평생을 주력(다라니)으로 득도를 했어요.

그 후 전라도 장흥에 있는 고금도라는 섬에 가서 천일기도를 목표로 하고 공부를 했답니다. 쌀은 물론 아무것도 없이 무인도인 고금도에 들어가서 천일 동안 공부를 하는 거예요. 다만 부처님에 대한 믿음만 가지고 고금도를 갔지요. 석화를 따고, 산딸기를 따먹고 하면서 천일기도를 하는데 한 해가 지났어요. 한 해가 지나고 보니까 뜻 밖에도 배 한척이 표류하다가 고금도에 기착을 했어요.

가서 보니까 뱃사공은 없고 쌀가마니가 배에 가득 실려 있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주인이 나타나질 않았답니다. 그래서 그 쌀을 양식으로 삼아 천일을 다라니 주력을 했습니다. 그 결과 도통을 했어요. 크게 신통을 얻었답니다. 신통을 얻어가지고 배도 없이 육지를 나올 수 있었어요. 바다 위를 걸어가지고  육지로 나온 스님이어요. 그 분이 '농산'스님이어요. '용파'스님은 '농산'스님하고 잘 알아요. 도반이었습니다.

그래서 '용파'스님이 '농산'스님에게 찾아갔습니다. '용파'스님이 한양의 수락산 내원사에다가 방 하나를 얻어 놓고, 한양의 세금동에 있는 금선암에서 주석하고 있는 '농산'스님을 찾아가 상의를 했어요. ‘나라에 후사가 없으니까 우리가 100일 기도를 합시다. 정조대왕의 후사를 이을 아드님을 낳을 수 있도록 우리가 100일 기도를 해드립시다.’ 하니까 '농산'스님도 쾌히 승낙을 했어요. 그래서 '농산'스님은 세금동 금선암에서 100일기도를 입재 했고,   '용파'스님은 수락산 내원사에서 100일 기도 입재를 했습니다. 100일이 되어 회향을 했는데 왕궁에서는 잉태 소식이 없어요.

그러니까 중전이나 후궁들한테 잉태 소식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다시 '농산'스님하고 '용파'스님이 만나서 ‘100일 기도를 한 번 더 하자’고 하여 또 100일 기도를 더 했습니다. 또 100일 기도를 했지만 200일이 지나가도 아무 소식이 없어요. 그래서 아주 괴로워하다가 '농산'스님이 '용파'스님을 앉혀놓고 결심을 했어요.

‘내가 정조대왕 다음 대를 이을 아드님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용파'스님에게 자기의 결심을 편지로 적어서 왕한테 올려주라고 하고, 어느 날 기도를 마치고 목욕재계한 후 옷을 갈아입고 좌탈입망을 했습니다. 앉아서 가버렸다고요. 그러니까 정조대왕의 후사가 되려고 좌탈입망한 것이지요.

그 영혼체가 이제 들어가려고 하는 거예요. 정조대왕이 중전 혹은 후궁하고 합방하는 날 입태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좌탈입망 할 때 정조대왕의 후궁이 있었는가 봐요. 원빈 박씨라고 그래요. 원빈 박씨의 꿈에 '농산'대사가 연을 타고 입궐하는 꿈을 꾸었어요. 그리고 자기 방으로 드는 꿈을 꾸었어. 그러면서 입태(入胎)를 하였고, 10달이 차서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 아기가 조선조 제23대 순조대왕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여러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으로 되어가는 거예요. 인연으로 되어가요. 또 업이 모든 것을 창조 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들은 생각이 있잖아요.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한 생각이 중요한 거예요. 한 생각, 가령 ‘내가 정조대왕의 후사가 되어서 다음 생에 태어나 이 세상을 잘 다스리는 왕이 되리라’ 하는 한 생각, 이 한 생각이 중요한 거예요.

한 생각이 천당도 만들고, 지옥도 만드는 거예요. 이게 불교입니다. 생각 있는 사람들의 그 한 생각이 중요한 거예요. 저놈을 내가 죽여야 되겠다고 하는 한 생각, 이 생각을 잘못하면 사람을 죽이는 거예요. ‘나는 기어이 윤회생사를 벗어나야 되겠다. 부처님 회상을 만났을 때 윤회생사를 벗어나야 되겠다.’ 이 한 생각이 윤회생사를 벗어날 수 있도록 여러분을 이끄는 거예요.

그 한 생각이 대단히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일체유심조′라고 합니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요. 인연 따라 모든 것은 되어갑니다. 업이 모두를 만들어요.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연기법(연기론)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 두어야 됩니다. 이게 불교입니다.


출처/현지사 2009.6.30.화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 법문중에서 발췌


이조 선조대왕 때 '권율'이라는 재상이 있었습니다/전생담

 이조 선조대왕 때 '권율'이라는 재상이 있었습니다


 선조대왕 때 '권율'이라는 재상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이순신'장군하고 라이벌이었던 장군이기도 했습니다.   '권율'장군에게는 두 사위가 있었어요. '신립'이라고 하는 장군이 있었고,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과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을 알지요?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 이분이 '권율'장군의 사위였어요.

이 두 사람이 자기의 장인인 '권율'장군을 만났는데 '권율'장군이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었어요. '신립'장군은 당초에 그 상(얼굴 모양)이 원만했답니다. 원만하고 부귀를 누릴 만한 상이었어요. 그런데 자기의 큰사위인  '신립'을 보니까 요귀(妖鬼)와 사기(邪氣)가 끼어있어요. 그래서 저 사위가 근래에 무슨 짓을 했을까 하고 궁금해 했단 말이어요. 그래서 '신립'에게 물어 봅니다. ‘자네는 요즘 특별히 무슨 일이 있는가?’하고 물어보니까, '신립'이 대답하기를

‘예, 장인어른, 제가 강원도 산속에 달포 전에 사냥을 갔었습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을 만났습니다. 산중에서 길을 잃고 하룻밤 머물 집을 찾고 있었는데, 뜻 밖에도 집 한 채를 발견하고 그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 집을 찾아가서 주인을 찾으니까 아무도 없고, 소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나오더군요.

그 소복을 한 젊은 여자가 '신립'장군을 보고 울면서 근래에 일어났던 자초지종을 주~욱 이야기 하는데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자기 아버지가벼슬을 높이 살았는데 어떻게 당쟁에 휘말려가지고 세상이 싫어서 낙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산골에다가 집을 지어가지고 전부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를 하면서 그 많은 식솔(종)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종들 가운데는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센 사내종이 있었는데, 그 사내종이 자기의 아버지한테 딸을 달라고(딸한테 장가를 들겠다고)하니 아버지가 펄쩍 뛰었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노발대발해가지고 여러 종들에게 ‘저 못되고 힘센 종놈을 나무에다가 묶어 놔라’ 해가지고 나무에다가 묶어 놨답니다.

그런데 그 종놈이 어찌나 힘이 세던지 저녁에 묶은 밧줄을 풀고 나와서 아버지 어머니 종들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 장군님! 나를 좀 보호해 주소서. 어쩌면 오늘 저녁이나 혹은 내일 저녁에 나타나서 나를 죽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살려 주소서 하고 청하더라 그거요.

그래서 '신립'장군이 가만히 들어보니까 너무도 해괴한 일이고 동정이 가고 해서 ‘아! 그러냐.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그날 저녁에 그 집에서 자게 되었습니다. 예측한 대로 그 못된 종놈이 칼을 들고 들어오는데 그것을 보고 '신립' 장군이 어렵잖게 종놈을 처치해버렸습니다. '신립'은 장군이잖아요. 몇 십 명도 문제가 아닌 거예요.

그 종놈을 처치하고, 이튼 날 이제 나는 갈 길을 가야 되는 몸이어서 떠난다고 하니까, 그 처녀가 '신립'장군한테 매달리면서 ‘나를 보호해 주소서. 나를 살려 주시옵소서. 나를 책임져 주세요.’하고 그렇게 애원하더라 그거요. 그런데 그 '신립'이 도덕적으로 상당히 깨끗했던 모양이에요. 자기 부인이 있는데 허락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갈 길도 바쁘고, 또 집이 있고, 그러니까 다른 인연을 찾으십시오. 내가 그 못된 놈을 처치했으니까 나는 가야 된다’고 하면서 붙들고 사정하는 그 여자를 뿌리치고 왔답니다. 이제 상당히 길을 걸어 왔는데 그 처녀의 비명소리가 산천을 흔들더라 그거예요. 그 비명소리가 나서 돌아보니까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어요. 다시 그 처녀의 집에 가보니까 그 여자가 자기 집에다가 불을 놓고 죽어 버렸다 그거예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라고 장인인 '권율'장군한테 말씀을 드렸습니다.’

'권율'장군이 잘 봤지. 이 '신립'장군은 평소에 원만하고 부귀를 갖춘 상이야. 그런데 지금 요귀가 끼어 있거든. 그래서 '권율'장군이 ‘아! 그랬었구나’ 하는 것을 짐작을 했습니다.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한테는 또 무슨 일이 있었느냐? 오성이라는 사람은 귀인의 상은 아니지만 얼굴에 사기(邪氣)가 있었어요. 그런데 사기(邪氣)가 없어져 버렸어. 오성을 보니까 얼굴에 나타났던 요귀(妖鬼)없어져버렸단 말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하고 물어보니까 오성이 대답하기를,

‘장인어른, 저는 충청도 천안 지방을 주~욱 돌아다녔었는데, 하루는 날이 저물어 가지고 어느 주막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요 잠이든 한밤중에 방문이 부스스 열리더니 30살 넘어 보이는 처녀가 다짜고짜로 달려듭디다. 너무도 엉겁결에 벌어진 일이라 꼼짝을 못하고 당했습니다. 그 처녀가 ‘아! 됐다’ 하면서 그 자리에서 참 기묘하게도 나뒹굴더니 기막히게도 급살을 해서 죽어버렸습니다. 그 추녀(醜女)는 그 지방에서 소문난 추녀였었는데 아무도 데려가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가끔 저녁이면 그 주막에 나타나서 손님들한테 소원을 풀어달라고 애원을 했던 추녀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장인은 ‘아! 그랬었구나. 그러니까 자네 얼굴에 평소 사기(邪氣)가 돌았었는데 그 사기(邪氣)가 싹 없어져버렸어.’라고 말했습니다.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의 얼굴에 사기(邪氣)가 돌았었는데 그 사기(邪氣)가 전부 없어져 버렸어. 여러분, 왜 없어졌겠습니까? 그 여자(추녀)가 가져가는 거예요. 여러분! 이치가 있습니다.

남자들이 함부로 처녀나 유부녀를 강제로 추행을 하면 그 당사자의 액운을 가져갑니다. 그런 과보가 있습니다. 그 처녀를 그냥 무정하게도 떼어 버리고 자기 길로 왔던 '신립'은 임진왜란 당시 탄금대에서 전사를 했고, 이항복은 나중에 정승까지 올라갔습니다. 일생을 잘살았다는 거예요.

우리 신도 분들, 우리는 기어이 윤회를 벗어나야 돼요. 지옥이나 짐승 몸을 받아 가면 큰일입니다. 그러면 절대로 안 됩니다. 여러분, 지금이 정말로 좋은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살려야 됩니다. 석가모니불을 간절하게 염하면서 발원을 해야 됩니다. 욕심을 가지고 하면 안 됩니다. 세간적인 욕심을 가지고 하면 안 됩니다. 

출처/현지사 2009.6.30.화 큰스님 춘천 법문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