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
2022년 8월 18일 목요일
왕양명/윤회한다.’는 가르침
값을 많이 받고 소가 된 이야기가 있습니다./전생사례
값을 많이 받고 소가 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을 적어서 어떤 기록에 남겨 두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걸 읽어 볼 수가 있는데, 이런 사례가 수 백 천만 개가 있지요. 지금으로부터 1200년 전, 그러니까 중국 당나라 때의 이야기입니다. '원씨'의 처 '사씨'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원씨'이고, 부인의 성이 '사씨'입니다. '사씨'가 술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 갔는데, 그 '사씨'는 딸이 하나 있어서 시집을 보내고 말년에 죽었습니다. '사씨'가 죽었는지 6년쯤 되었어요. 어느 날 밤 그 딸의 꿈에 어머니가 현몽을 합니다. 어머니가 뭐라고 하느냐?
‘내가 생시에 술은 적은 되로 팔고, 값은 큰 되 값을 받은 죄로 소가 되었다. 지금 너의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아니한 북산(산 이름이 북산임)아래 어느 인가에 있다가, 그 후로 법계사 옆의 '하우사'라고 하는 사람 집에 팔려와 있다. 그런데 이 주인인 '하우사'가 너무 혹독해가지고 내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단다.
날마다 그 고통이, 고된 삶이 형언할 수가 없고 하루도 편히 살 수가 없어. 이른 새벽부터 저녁까지 밭을 가느라 모진 고통을 겪고 있으니, 사랑하는 딸아! 나를 좀 그 집에서 풀려나오게 해다오.’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여러분, 이해하겠지요? 딸이 잠에서 깨어나 그 꿈이 너무도 생생하기 때문에 울면서 남편을 깨워 그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듬해 정월달에 마침 법계사의 여승이 탁발을 하러왔어요. 그래서 그 여승을 붙잡고 그 법계사 근처 마을에 사는 '하우사'라는 사람 집까지 알아놨습니다. 이 사람도 농부의 딸인데 소살 돈이 쉽게 마련이 되겠습니까.
남편한테 말을 해서 그저 둘이 열심히 일을 하고 저축을 해가지고 소살 돈을 풍족히 마련했습니다. 그런 후에 '하우사'라고 하는 사람 집에 소를 사러갔습니다.
그곳에는 과연 어미 소가 있었어요. 그 소를 사가지고 오니 소가 딸을 보고 한 없이 울더랍니다. 딸이 지극한 마음으로 이렇게 소를 보호하고 있다는 소문이 당나라 전역에 퍼졌어요.
그때 왕의 후비들이 이 소식을 (소문을)듣고 이 사실이 맞는가 싶어서 '사씨'의 딸을 불러들였어요. '사씨'의 딸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정말 사실이거든. 그래서 많은 돈과 비단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기서 스님이 조금 더 각주를 할게요(보충해서 설명을 할게요). ‘생시에 술을 적은 되로 팔고, 값은 큰되 값을 받고 살다가 그 죄로 소의 몸을 받았다. 나는 지금 어느 집에 와서 모진 고통을 받으면서 살고 있으니 나를 살려다오.’ 하는 이 꿈의 선몽은 어머니 꿈이 아닙니다.
지장보살님 올 시다. 그 소가 된 어머니가 무슨 신통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들 그런 꿈을 꾸지요. 천도재 하기 전에 부모님 꿈도 꾸고 하는 것은 전부 지장보살님의 위신력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장보살님은 정말로 관세음보살님 못지않게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위대한 붓다입니다. 그래서 그 공덕은 '항하사겁설난진'이어요. 다 말할 수 없어. 그 딸이 지금의 우리 신도라면, 1200년 전이 아니고 지금 나한테 와서 꿈 이야기를 했다면, 우리 현지사는 그렇게 놔두지 않습니다. 그 어머니 소를 천도시켜줘야 되지요.
축생보가 끝나면 이 분은 지옥으로 갑니다. 이 분은 먼저 소의 몸을 받았어요. 지옥을 갑니다. 지옥을 가면 나올 기약이 없어요. 그러니 우리 현지사 신도라면 그 당사자 소는 물론이고, 그 따님의 친정집 조상님, 남편의 시가집 조상님, 두 양가의 외갓집 조상님, 그리고 선대 영가님을 포함해서 50명이든 100명이든 4번 정도 천도재를 지내라.
천도재 1회 비용은 다른 절 천도재 비용이다. 10년 전 천도재 비용이다. 그런데 이런 공덕이 없으면 안 돼. 자동차가 기름이 떨어지면 갈 수 있습니까?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권했을 거예요.
그래서 따님의 말대로 천도재를 올렸다면 그 어머니는 그냥 죽습니다. 영체를 쏴악 빼오면 소는 죽습니다. 1·2·3번 영체 있지요? 그 영체를 쏙 빼면 죽는 거예요. 그래서 지옥보를 잘라놓고 하늘로 올려 줄 거예요. 이게 우리 현지사의 천도재입니다.
출처/2010. 3. 8. 월(음1.23) 큰스님 대전 법문중 발췌
'대각국사 의천'의 설화/전생담
'대각국사 의천'의 설화/전생담
고려시대의 고승 '대각국사 의천'의 설화(전생담)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고려 당시 제11대 문종왕의 4째 아들이 있었는데 그분이 유명한 대각국사 의천이어요.
고려 당시에 한 두 사람의 큰스님을 꼽으라고 하면 '대각국사 의천'과 '보조국사 지눌'을 꼽아요. 대각국사 의천은 4번째 왕자입니다. 11살 때 출가를 해서 승려가 되었습니다.
30대 초반에 중국의 송나라(그 당시 당이 망하고 송나라 건국)에 건너가서 공부를 1년 남짓하고 돌아왔는데, 이분의 전생담입니다.
이분이 갓 태어나면서 울기를 시작해요. 1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백일이 다 되도록 울음을 그치지 않아요.
계속 울어댔습니다. 왕이 하도 기이해서 몇몇 신하에게‘도대체 이 꼬마가 우는 원인을 한번 찾아 봐라’라고 특별히 명을 내렸습니다. 가끔 이 애기가 울다가 뚝 그친 적이 있어요.
그 때는 가만히 들어보니까 아주 멀리서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요. 종소리가 울릴 때에는 이 애기(문종의 4째 아들인 대각국사 의천)가 울음을 그쳐요.
그래서‘참 이상하다. 종소리가 나는 곳을 우리가 추적해 보자’고 하여 추적을 했어요. 여러분, 그것이 실화라고 하지만 우리가 받아들이기가 곤란한 신비함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화에다가 조금 보태졌으니까 믿으셔도 됩니다.
들려오는 종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만주 벌판까지 갔다는 것입니다. 도착하니까 절이 있어요. 거기서 종을 치면 애기(대각국사 의천)가 듣는 다는 거요. 그 주지를 불러들였습니다. 그 주지가 방안에 들어오니까 애기가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 그러니까 그 주지가
‘죄송하지만, 이 왕자님의 배꼽 밑을 보고 싶습니다. 내가 아는 우리 절 주지스님이 언제 입적을 했는데 배꼽 밑에다가 부처 불(佛), 없을 무(無), 신령 영(靈) 자를 썼으니까 한번 조사를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왕이 허락을 했습니다.
그래서 애기의 배꼽 밑을 보니까 과연 불무영(佛無靈)이라고 쓰였어요. 그 주지가‘우리 스승(주지스님)이 틀립없습니다.’라고 했어요. 왕이‘너의 주지 스님이 한평생을 어떻게 살았느냐?’고 하니까
‘우리 스승은 정말로 한평생을 말로 할 수 없는 기이한 점이 있습니다. 스님되기 전까지 종노릇(머슴살이) 했습니다. 머슴살이를 수 십 년 했는데 그 동안의 세경(노임)을 받아가지고 장가도 안가고 금붙이를 사서 우물 속에다가 저장을 했답니다.
몇 십 년을 하니까 금붙이 덩어리가 대단히 컸습니다. 그 당시 어느 절이 화재가 나서 소실이 되었는데 그 절의 승려들도 나몰라라하며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때 우리 스승이 머슴살이를 해서 모아 놓은 금붙이를 가지고 중창을 했습니다. 그런 후 스스로 머리를 깎고 주지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주지 밑에서 시봉을 하다가 승려가 되었습다.
주지가 되었는데 정말로 이상한 일입니다. 주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스님이 벼락을 맞아 꼽추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듬해 또 벼락을 맞았습니다. 그 이듬해에 죽어버렸습니다.’
라고 하는 거요. 주지스님이 두 번이나 벼락을 맞고 죽어버렸다는 거요. 그 참 이상하지요. 이 애기가 우리 주지스님이라는 거요.
그 운명이 너무너무도 기구하고 말로 표현 할 수 없으리만큼 이상해서 내가 배꼽 밑에다가 부디 부처가 되라고 부처 불(佛)자를 썼고, 불교에서 무(無)자가 가장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도가(道家)에서 조차도 최고의 의미를 지닌 무(無)자를 써놨고, 그리고 신령 영(靈)자도 썼다는 거요.
그게 역력하게 써져 있었답니다. 그래서 우리 스승이라는 거요. 과연 그 대각국사 의천이 왕자의 신분으로서 불도에 뜻을 두고 11살 되던 해에 출가를 했답니다.
11세 소년이‘왕과 국가를 위해서 내가 큰스님이 되겠습니다.’하고 자원을 하니 문종 임금이 감동해가지고‘너의 뜻이 그렇다면 출가를 하여 훌륭한 스님이 되어라.’
해서 승려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30살이 넘도록 수행을 잘하다가 더 많은 공부를 하기 위하여 중국의 송나라로 들어갔습니다.
1년 여 동안에 중국의 큰스님들을 모두 만나서 담론을 하고, 법열을 논의 하는 등 덕행을 쌓다가 귀국을 해서 약 4,000여권에 이르는 장소(경·율·론 삼장을 주석하는 것)를 번역했습니다.
그 당시 흥왕사에서 간경 교장도감(고려시대 속장경의 판각을 맡아 보던 관아. 선종3년(1086년)대각국사 의천의 제청으로 흥왕사에 설치)을 두고 장소 만을 4,000여권 번역 출간한 대각국사 의천은 불교 중흥에 크게 일조를 하였고, 47세를 일기로 입적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여러분한테 하는 것은 부처님의 교단을 찾아와서 불공을 하거나, 천도재를 모시거나, 크게 불사를 일으켰거나, 불·보살이 알아줄만한 크나큰 불사를 일으켰거나 한 사람들은 한평생 묘합니다.
여러분들이 금생만 가지고 볼 때는 참 우습지요. 머슴살이를 하면서 이렇게 불사를 했는데 어떻게 3년 동안에 벼락을 두 번이나 맞아가지고 죽어버려요. 그렇지요?
출처/2009.02.02.월(음1.8)큰스님 춘천 법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