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8일 목요일

왕양명/윤회한다.’는 가르침

 왕양명


‘사람은 죽으면 죽지 않는다.

윤회한다.’는 가르침을 확실히 인식해야 합니다.

중요합니다.


중국 명나라 당시, 명나라를 대신할만한 대유학자가 있었습니다. 왕양명이라는 대석학이 있었습니다. 명나라, 중국을 대신할 만한 왕양명, 이 사람은 지행합일을 주장했습니다. ‘알았으면 행하라!’는 겁니다.

학행일치(學行一致)라고 그러죠? 같은 말입니다. 이건 왕양명에서 나왔습니다. 지행합일을 창도한 달인입니다.

이 사람 전생이 스님이었어요. 도통한 스님이었어요. 얼마만큼 도를 이루었느냐...
스님은 대장경을 정리해줄 수 있고 정리해놓은 것이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존평, 깨달음을 넘어 붓다까지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점안을 해놓고 이것이 세월이가면 보물이 될 겁니다. 여러분 읽으십시오. 이 사상을 여러분 사상으로 하면서 사세요. 이제 경전을 보세요. 그건 그렇고..

어느 정도 큰 스님이냐, 참선을 많이 해서 소위 마음자리를 깨쳤다, 화두를 타파했다. 그 정도로 가고 더 갔습니다. 마음자리를 깨치면 이제부터 시작인 겁니다!!! 어찌해야 하느냐. 스님이 이 선불교에 충고하는 거예요. 이제 정말 음계를 지키고 여자를 멀리하라.

중계를 지키고(입으로 3가지 업을 짓지 말고, 몸으로 4가지 짓지 말고 뜻으로 3가지 짓지 말고) 두타행 공부를 하여 너도 없고 나도 없는 그 경지로 올라가야 거기가 아라한입니다. 색계, 무색계를 벗어날 수 있어요. 윤회를 벗어나요. 깨달아서는 이제 시작이요 문은 열었어요!!

이 분이 선을 많이 해서 근본을 깨쳤어요. 전생에 스님이 되었어.. 이름은 금산대사! 쇠 금(金)자 ,메 산(山)자. 근본자리를 깨치고 여기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잘못하면 외도가 잡아가기 때문에 정말 중요해요. 스님이 말한 대로 가야지 외도로 빠집니다.

이 사람이 정법으로 못 가고 외도로 갑니다. 하루는 목욕재계를 하고 큰 절 조그만 법당으로 들어가면서 주지이하 삼직들에게 명하면서 내가 들어간 이후 절대 문을 열지마라.

10년, 50년이 되든 유훈으로 수지할 수 있도록 명심하고 명심해라!! 강하게 유언을 하고 들어갔습니다. 안 나왔지만 큰스님 명이라 열 수가 없어요.

10년, 50년이든 누가 오든 열 수가 없어요. 연 사람은 자기가 열어요. 후신인 금산대사가 아니면 열 수 없는 거예요. 그리 작정을 해놓고 문을 걸어 잠궜죠.

벽에다가 한 시 구절을 써놓고 앉아서 좌탈해 버렸어. 서서죽으면 입망이라고 합니다. 도인은 그럴 수 있어요. 좌탈, 입망한다고 해도 보살, 붓다라고 할 수 없어요. 보살, 붓다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되요.

50년이 흘렀습니다. 왕양명이라고 한 분이 그러한 큰 유학자가 당대의 석학이죠. 100여명 제자를 데리고 중국 절강성에 있는 금산사에서 경내를 둘러보더니 바로 그 법당 앞으로 가서 법당문을 혹 열어요. 대중이 놀라요.

50년간 안 열었던 법당인데 법당문이 확 열어지거든 더 놀란 것은 스님이 앉아서 입적해 죽었는데 미라가 되었어. 그래서 모든 100명의 제자와 그 대중이 와서 육신만 남아있는 금산대사에게 와서 무수히 예배합니다.

그런데 벽에 글씨가 적혀있어. 50년 전 왕수인이(금산대사 속명) 개문인시 폐문인이라. 문을 연 사람은 문을 닫은 사람이라. 정령방락환개복, 비로소 선가에 무너지지 않는 불사신이 있음을 믿겠네. 전생, 후생, 윤회 이것이 사실임을 믿겠네.

이걸 50년 전에 써놓고 갔어요. 대단한데,,, 이 금산대사가 명나라 때라서 참선하는 세력이 대단했습니다. 참선해서 깨쳤으면 보림으로 나가야지 그렇게 유학자로 가면 안 돼요 .외도로 빠진 거예요. 더 정진하고 정진해서 보살로 나아가야 해요.

지금 티벳 밀교가 세계를 먹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지금 15대 라마교 교주이면서 티벳의 왕입니다. 미국 지식인들이 대단히 좋아합니다. 세계의 지식인들이 대단히 좋아합니다. 그 품행이 대단히 자애스럽고 덕스럽고...

그러나 현지사에서는 지적합니다. 다 좋고 수행도 잘 합니다. 그러나 자연의 이법을 왜 거스르느냐. 왜 삼계에서 윤회에서 벗어나는 공부를 왜 중도에서 포기하느냐? 왜 사람으로만 오느냐?

티벳 불교, 국민을 위해 오는 것이지만 하지만 우주 이법을 거스르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한 업이다. 열시왕이 논죄할 것이다. 만나면 이야기해 줄 것이지만 나는 그 사람 만나기 위해 가지 않습니다.

금산대사도 잘못한 것이지. 올곧게 윤회에서 벗어나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금산대사와 같은 경지가 아닙니다. 그저 아들, 남편에 시달려서 그저 죽으면 이제 사람으로 안 오리. 70, 80%로 지겨워해요.

스님이 칭명염불이 최고의 수행법이니까 경전 읽고 석가모니불 염불하면서 점하나 찍어서 마음을 모아가시오 합니다. 나중에는 마음의 점을 찍고 하시오. 이런 공부를 시키죠. 여러분이 순서를 밟아야 하는데 스님이 갑자기 나타나서 공부를 지도하니까 문제가 있죠.

모든 생각을 놓고 나라고 하는 생각을 놓고 공부를 해야 하는 건데 금강경이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여러분은 욕심이 많아서 도를 이루려고 악착같이 하는데 나는 염려가 되요. 공부는 그러면 안 돼요. 큰일 날 수가 있어요. 머리가 돌 수가 있어요. 욕심을 버리고 해야 합니다. 그것은 문제가 됩니다.

금산대사,, 왕양명으로 발전했으니 처자를 거느렸으니..하나의 사상을 이 세상에 남겼는데 불교와 거의 맥이 같아 큰 허물을 묻지 않으나.. 다음 생에 사람으로 오더라도 그 동안 업연이 너무 얽히고 설켰기로 어쩌면 거의 90% 외도로 빠질 것이니 아깝다는 겁니다.

본바탕을 봤으면 (만물의 근원자리) 두타행을 하면서 계율을 지키며 계속 나없는 수행을 하여 공과 계합하여야 하는데 착을 떼어 내야 윤회를 벗어나는 건데 가야할 길을 가지 않고 옆길로 갔으니 안타깝다는 겁니다.

출처/법문집2권 중 2007년 6월 27일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에서 발췌


값을 많이 받고 소가 된 이야기가 있습니다./전생사례

 값을 많이 받고 소가 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을 적어서 어떤 기록에 남겨 두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걸 읽어 볼 수가 있는데, 이런 사례가 수 백 천만 개가 있지요. 지금으로부터 1200년 전, 그러니까 중국 당나라 때의 이야기입니다. '원씨'의 처 '사씨'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원씨'이고, 부인의 성이 '사씨'입니다. '사씨'가 술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 갔는데, 그 '사씨'는 딸이 하나 있어서 시집을 보내고 말년에 죽었습니다. '사씨'가 죽었는지 6년쯤 되었어요. 어느 날 밤 그 딸의 꿈에 어머니가 현몽을 합니다. 어머니가 뭐라고 하느냐?

 

‘내가 생시에 술은 적은 되로 팔고, 값은 큰 되 값을 받은 죄로 소가 되었다. 지금 너의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아니한 북산(산 이름이 북산임)아래 어느 인가에 있다가, 그 후로 법계사 옆의 '하우사'라고 하는 사람 집에 팔려와 있다. 그런데 이 주인인 '하우사'가 너무 혹독해가지고 내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단다.

 

날마다 그 고통이, 고된 삶이 형언할 수가 없고 하루도 편히 살 수가 없어. 이른 새벽부터 저녁까지 밭을 가느라 모진 고통을 겪고 있으니, 사랑하는 딸아! 나를 좀 그 집에서 풀려나오게 해다오.’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여러분, 이해하겠지요? 딸이 잠에서 깨어나 그 꿈이 너무도 생생하기 때문에 울면서 남편을 깨워 그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듬해 정월달에 마침 법계사의 여승이 탁발을 하러왔어요. 그래서 그 여승을 붙잡고 그 법계사 근처 마을에 사는 '하우사'라는 사람 집까지 알아놨습니다. 이 사람도 농부의 딸인데 소살 돈이 쉽게 마련이 되겠습니까.

 

남편한테 말을 해서 그저 둘이 열심히 일을 하고 저축을 해가지고 소살 돈을 풍족히 마련했습니다. 그런 후에 '하우사'라고 하는 사람 집에 소를 사러갔습니다.

 

그곳에는 과연 어미 소가 있었어요. 그 소를 사가지고 오니 소가 딸을 보고 한 없이 울더랍니다. 딸이 지극한 마음으로 이렇게 소를 보호하고 있다는 소문이 당나라 전역에 퍼졌어요.

 

그때 왕의 후비들이 이 소식을 (소문을)듣고 이 사실이 맞는가 싶어서 '사씨'의 딸을 불러들였어요.   '사씨'의 딸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정말 사실이거든. 그래서 많은 돈과 비단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기서 스님이 조금 더 각주를 할게요(보충해서 설명을 할게요). ‘생시에 술을 적은 되로 팔고, 값은 큰되 값을 받고 살다가 그 죄로 소의 몸을 받았다. 나는 지금 어느 집에 와서 모진 고통을 받으면서 살고 있으니 나를 살려다오.’ 하는 이 꿈의 선몽은 어머니 꿈이 아닙니다.

 

지장보살님 올 시다. 그 소가 된 어머니가 무슨 신통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들 그런 꿈을 꾸지요. 천도재 하기 전에 부모님 꿈도 꾸고 하는 것은 전부 지장보살님의 위신력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장보살님은 정말로 관세음보살님 못지않게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위대한 붓다입니다. 그래서 그 공덕은 '항하사겁설난진'이어요. 다 말할 수 없어. 그 딸이 지금의 우리 신도라면, 1200년 전이 아니고 지금 나한테 와서 꿈 이야기를 했다면, 우리 현지사는 그렇게 놔두지 않습니다. 그 어머니 소를 천도시켜줘야 되지요.

 

축생보가 끝나면 이 분은 지옥으로 갑니다. 이 분은 먼저 소의 몸을 받았어요. 지옥을 갑니다. 지옥을 가면 나올 기약이 없어요. 그러니 우리 현지사 신도라면 그 당사자 소는 물론이고, 그 따님의 친정집 조상님, 남편의 시가집 조상님, 두 양가의 외갓집 조상님, 그리고 선대 영가님을 포함해서 50명이든 100명이든 4번 정도 천도재를 지내라.

 

천도재 1회 비용은 다른 절 천도재 비용이다. 10년 전 천도재 비용이다. 그런데 이런 공덕이 없으면 안 돼. 자동차가 기름이 떨어지면 갈 수 있습니까?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권했을 거예요.

 

그래서 따님의 말대로 천도재를 올렸다면 그 어머니는 그냥 죽습니다. 영체를 쏴악 빼오면 소는 죽습니다. 1·2·3번 영체 있지요? 그 영체를 쏙 빼면 죽는 거예요. 그래서 지옥보를 잘라놓고 하늘로 올려 줄 거예요. 이게 우리 현지사의 천도재입니다.

 

 

출처/2010. 3. 8. 월(음1.23) 큰스님 대전 법문중 발췌

 

 

 

 

'대각국사 의천'의 설화/전생담

   '대각국사 의천'의 설화/전생담

 

 

 

 

고려시대의 고승 '대각국사 의천'의 설화(전생담)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고려 당시 제11대 문종왕의 4째 아들이 있었는데 그분이 유명한 대각국사 의천이어요. 


고려 당시에 한 두 사람의 큰스님을 꼽으라고 하면  '대각국사 의천'과 '보조국사 지눌'을 꼽아요. 대각국사 의천은 4번째 왕자입니다. 11살 때 출가를 해서 승려가 되었습니다.

 

30대 초반에 중국의 송나라(그 당시 당이 망하고 송나라 건국)에 건너가서 공부를 1년 남짓하고 돌아왔는데, 이분의 전생담입니다. 


이분이 갓 태어나면서 울기를 시작해요. 1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백일이 다 되도록 울음을 그치지 않아요. 


계속 울어댔습니다. 왕이 하도 기이해서 몇몇 신하에게‘도대체 이 꼬마가 우는 원인을 한번 찾아 봐라’라고 특별히 명을 내렸습니다. 가끔 이 애기가 울다가 뚝 그친 적이 있어요.

 

그 때는 가만히 들어보니까 아주 멀리서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요. 종소리가 울릴 때에는  이 애기(문종의 4째 아들인 대각국사 의천)가 울음을 그쳐요. 


그래서‘참 이상하다. 종소리가 나는 곳을 우리가 추적해 보자’고 하여 추적을 했어요. 여러분, 그것이 실화라고 하지만 우리가 받아들이기가 곤란한 신비함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화에다가 조금 보태졌으니까 믿으셔도 됩니다.

 

들려오는 종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만주 벌판까지 갔다는 것입니다. 도착하니까 절이 있어요. 거기서 종을 치면 애기(대각국사 의천)가 듣는 다는 거요. 그 주지를 불러들였습니다. 그 주지가 방안에 들어오니까 애기가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 그러니까 그 주지가

 

‘죄송하지만, 이 왕자님의 배꼽 밑을 보고 싶습니다. 내가 아는 우리 절 주지스님이 언제 입적을 했는데 배꼽 밑에다가 부처 불(佛), 없을 무(無), 신령 영(靈) 자를 썼으니까 한번 조사를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왕이 허락을 했습니다.

 

그래서 애기의 배꼽 밑을 보니까 과연 불무영(佛無靈)이라고 쓰였어요. 그 주지가‘우리 스승(주지스님)이 틀립없습니다.’라고 했어요. 왕이‘너의 주지 스님이 한평생을 어떻게 살았느냐?’고 하니까

 

‘우리 스승은 정말로 한평생을 말로 할 수 없는 기이한 점이 있습니다. 스님되기 전까지 종노릇(머슴살이) 했습니다. 머슴살이를 수 십 년 했는데 그 동안의 세경(노임)을 받아가지고 장가도 안가고 금붙이를 사서 우물 속에다가 저장을 했답니다. 


몇 십 년을 하니까 금붙이 덩어리가 대단히 컸습니다. 그 당시 어느 절이 화재가 나서 소실이 되었는데 그 절의 승려들도 나몰라라하며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때 우리 스승이 머슴살이를 해서 모아 놓은 금붙이를 가지고 중창을 했습니다. 그런 후 스스로 머리를 깎고 주지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주지 밑에서 시봉을 하다가 승려가 되었습다. 


주지가 되었는데 정말로 이상한 일입니다. 주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스님이 벼락을 맞아 꼽추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듬해 또 벼락을 맞았습니다. 그 이듬해에 죽어버렸습니다.’

 

라고 하는 거요. 주지스님이 두 번이나 벼락을 맞고 죽어버렸다는 거요. 그 참 이상하지요. 이 애기가 우리 주지스님이라는 거요. 


그 운명이 너무너무도 기구하고 말로 표현 할 수 없으리만큼 이상해서 내가 배꼽 밑에다가 부디 부처가 되라고 부처 불(佛)자를 썼고, 불교에서 무(無)자가 가장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도가(道家)에서 조차도 최고의 의미를 지닌 무(無)자를 써놨고, 그리고 신령 영(靈)자도 썼다는 거요.

 

그게 역력하게 써져 있었답니다. 그래서 우리 스승이라는 거요. 과연 그 대각국사 의천이 왕자의 신분으로서 불도에 뜻을 두고 11살 되던 해에 출가를 했답니다. 


11세 소년이‘왕과 국가를 위해서 내가 큰스님이 되겠습니다.’하고 자원을 하니 문종 임금이 감동해가지고‘너의 뜻이 그렇다면 출가를 하여 훌륭한 스님이 되어라.’

 

해서 승려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30살이 넘도록 수행을 잘하다가 더 많은 공부를 하기 위하여 중국의 송나라로 들어갔습니다. 


1년 여 동안에 중국의 큰스님들을 모두 만나서 담론을 하고, 법열을 논의 하는 등 덕행을 쌓다가 귀국을 해서 약 4,000여권에 이르는 장소(경·율·론 삼장을 주석하는 것)를 번역했습니다.

 

그 당시 흥왕사에서 간경 교장도감(고려시대 속장경의 판각을 맡아 보던 관아. 선종3년(1086년)대각국사 의천의 제청으로 흥왕사에 설치)을 두고 장소 만을 4,000여권 번역 출간한 대각국사 의천은 불교 중흥에 크게 일조를 하였고, 47세를 일기로 입적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여러분한테 하는 것은 부처님의 교단을 찾아와서 불공을 하거나, 천도재를 모시거나, 크게 불사를 일으켰거나, 불·보살이 알아줄만한 크나큰 불사를 일으켰거나 한 사람들은 한평생 묘합니다. 


여러분들이 금생만 가지고 볼 때는 참 우습지요. 머슴살이를 하면서 이렇게 불사를 했는데 어떻게 3년 동안에 벼락을 두 번이나 맞아가지고 죽어버려요. 그렇지요?

 

 

 

출처/2009.02.02.월(음1.8)큰스님 춘천 법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