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25일 목요일

조선시대 선조대왕 때 일어난 실화/전생담

 조선시대 선조대왕 때 일어난 실화


조선시대 선조대왕 때 일어난 실화입니다. 선조대왕은 임진왜란(1592~1598년)이 일어났던 그 당시를 살았던 왕입니다. 선조대왕은 덕이 있는 대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서도 명군으로 기록됩니다. 상당히 덕이 있고, 지혜도 있는 명군으로 인정해 주는데, 그 당시 동인·서인이라고 하는 당쟁(黨爭)이 심한 때인지라 어진 정치를 펼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전라도 진도 군수로 발령을 받아 부임해 간 ‵이응′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외자이지요. 이분은 대단히 선정(善政)을 베풀었습니다. 어느 날 일본 선박 한 척이 조선의 수군에게 나포(拿捕)되었어요. 조선의 관리들이 그 선박 속의 일본 사람들을 묶어가지고 데려왔어요. 그런데 진도 관아의 아전들은 일본 선박 뱃사공들의 수괴(수장)를 죽이려고 해요. 이 사람만은 죽여야 된다 그거요. 말도 통하지 않고, 왜 우리나라에 왔느냐 그거요.

‘이건 필시 무슨 뜻이 있다. 스파이가 아니냐. 이 못된 놈들. 이 중에서 한 놈은 죽여야 된다’

하면서 참수(斬首)할 찰나입니다. 진도군수 ‵이응′이 그 사실을 보고 받고 곧 명령을 내렸어요.

‘절대로 참수하지 마라. 심한 풍랑이나 태풍을 만나가지고 불시에 기착했을 것이다. 죽이지 마라. 내가 지령한다.’

하고 명령했습니다. 그런 후에 오히려 10일 동안 융숭한 대접을 해서 일본으로 돌려보냈답니다. 진도군수 ‵이응′에게는 ‵창해′라고 하는 손자가 있었어요. ‵창해′는 머리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기골이 남자답고, 지혜 총명하고, 빼어난 용모를 갖추었답니다. 어느 날 ‵창해′라는 분이 제주도 목사로 발령을 받아 관속 20여명을 거느리고 부임하는 길에 태풍을 만나 조난을 당하여 ‵이 창해′등 관속 3사람만이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한참을 표류하다가 ‵지마도′라고 하는 일본 땅에 기착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일본 섬의 도주(島主, 섬을 다스리는 어른)앞에 끌려가 가지고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했지만, 도주가 볼 때는 죄인(스파이)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날 자기들처럼 한때 조난을 당하여 조선의 진도 땅으로 표류해서 그렇게 고생을 한 사람들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도주가 바로 진도군수 ‵이응′이 살려 보낸 일본 선박의 수장이었습니다. 그 도주가‘너희들 ‵이응′이라는 사람을 아느냐?’라고 묻더랍니다. ‵이응′이 누구죠? 진도군수로 살았던 ‵창해′의 할아버지이지요. 그러니까 ‵창해′라는 사람이‘우리 할아버지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도주는 너무도 반가워하며 융숭한 대접을 합니다. 그 창해라는 사람이 머리도 총명하고, 용모도 잘생기고, 남자답고 하니까 도주가 정을 붙입니다.

도주는 아들이 없고 딸만 하나 있었습니다. 가끔은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시키다가, 차츰 상당한 어느 직책을 맡겨봅니다. 맡기는 쪽쪽 착실하게 일을 잘 처리했답니다. 그러니까 도주의 눈에 들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창해′를 불러가지고‘우리 딸하고 네가 평생 가약을 맺고 살아라. 부부인연을 맺고 살아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는 적어도 300~400년 전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민주사회는 아니었습니다. 그 섬의 도주이면 그 섬에서는 완전히 삼권을 쥐고 있는 거요. 그런데 ‵이창해′는 그 당시 나이가 아마 30세 정도 되었습니다. 일찍이 12살 때 18살 처녀와 결혼해 가지고 살다가 19살 때 상처(喪妻)했어요. 일본여인들은 일반적으로 남편을 대단히 공경하고 예절이 분명해요. ‵이창해′는 도주의 딸과 결혼을 하여 사는데 이름도 성도 바꿉니다. ‵창해′는 놔두고 그 도주의 성을 따서 ‵모찌모또 창해′가 되었어요. 나중에는 도주가 모든 도의 정사(政事)를 ‵창해′한테 맡겨 버립니다. 그래서 30년을 삽니다. 슬하에는 아들 딸 12명의 자녀를 두었답니다. 그 중 큰아들 이름이   ‵의충′이었어요. ‵의충′은 자기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닮아가지고 도량이 넓고, 잘생기고, 아주 용맹스러웠어요.

이렇게 30년이 흘러갔습니다. 한편 고국에서는, ‵창해′어머니가 오씨인데 강원도 고성사람이어. 불교 신자였는데 관음 행자(관음 신자)였습니다. 자기 아들 제주 목사   ‵창해′일행이 바다를 건너다가 조난을 당했다는 비보를 듣고 실신했어요. 그래서 가까운 낙산사를 다니면서 아들 명복을 비는 것이 일과가 되고 습관이 되었답니다. 강원도 양양 낙산사는 지금도 유명한 곳이죠.

낙산사를 다니면서 아들이 조난당한 그날을 기일로 꼭 알고 해마다 천도재를 모십니다. 30년이 흘렀습니다. ‵창해′의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창해′의 어머니 곁에는 ‵남향′이라는 ‵창해′의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돌아가시면서 ‵남향′을 불러놓고 유언을 하기를‘너의 형이 떠난 날(조난당한 날)이 아무 달 아무 날이니까 이날만은 반드시 낙산사에 가서 천도를 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창해′의 어머니가 신심이 있는 분이었어요.

고국에서는 그랬고, 일본에서의 창해는 이제 아들도 그렇게 많이 낳았고, 또 자기 아들이 대단히 남자답고 지성스럽고 일처리도 잘하기 때문에 모든 정사를 아들한테 물려주었습니다. ‵창해′가 하는 것이라고는 날마다 낚시질이나 하면서 소일 했답니다. 하루는 바다에 나가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일진광풍이 일더니 무서운 파도가 ‵창해′의 낚시 배를 휘몰아 이끌고 어디로 달려가 버렸습니다. 어디에 도착했느냐하면 강원도 통천에 도착했답니다. 기절을 했다가 깨어나 눈을 떠보니까 조선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어요. 고국의 사람들이어요. 낯익은 땅이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이 얼마나 먼 바다 거리입니까. 자기가 승선했던 배는 낚시 배였는데 옷만 좀 적셨더라 그거요. 정신을 수습해서 물어보니까 강원도 통천이라는 거요. 그렇다면 낙산사가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도 낙산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또 자기 있는 곳에서 가까우니까‘낙산사를 한번 구경해 보자. 가서 부처님께 기도나 올리자’하며 낙산사에 가서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기 동생을 만납니다.

그날이 자기가 조난당했던 날인지 동생 ‵남향′이 천도재를 마치고 귀가하는 중이었고, 형 ‵창해′도 낙산사에서 기도를 마치고 낙사사를 구경하면서 나오는 중이었는데 뜻밖에 동생을 만났어. 마주쳤는데 30~40년의 세월이 흐르다가 보니 동생(남향)이 형(창해)을 못 알아 봤습니다. 그런데 일본 복장을 한 남자가 지나가니까 동생이‘참 묘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다가가 묻습니다.

‘당신 일본 사람이오, 조선사람이오’라고 하니까 ‵창해′가‘사실 나는 조선 사람입니다.’‵남향′이‘그러면 당신이 혹시 ‵창해′가 아닙니까’라고 물었어. 30~40년 흘렀다고 해도 동생을 몰라보겠습니까? 알 수 있지요. 그래가지고 서로를 알아보고‘아이구 형님!’하면서 붙들고 뒹굴고 얼싸안고 울었다는 거요. 고국에 계시는 부모와 조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통곡을 했답니다. 이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이렇게 인과는 분명한 것입니다. 표류하던 일본인 도주(島主)에 대하여 자기 할아버지가 따뜻하고 융숭하게 대접해서 돌려보냈기 때문에 손자인 ‵창해′도 뜻밖의 태풍으로 인한 조난을 당해가지고 일본 지마도 땅에서 그 도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도주의 사위가 되고 한 그 결과는 인과의 선인선과인 것입니다. 인연의 도리인 거요. 왜 하필 조선 땅으로 태풍이 몰아쳐 버렸어. 인연의 도리인 거요.

그래서 모든 인간사는 하나님이 만들고 하나님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전생에 사람을 죽였다? 반드시 죽입니다. 눈을 떠서 보니까 반드시 인과가 있어요. 하나님은 없어. 붓다까지 올라가서 보니까 절대로 하나님은 없어. 이 법계의 주인은 없어. 그러나 다만 부처님은 계셔. 왜? 부처님은 본래 중생으로 해서 수행을 했거든요. 여러분들도 모두 다 붓다가 될 수 있습니다.


출처/현지사 2009. 02. 17. 화(음1.23) 자재 만현 큰스님 부산 법문중 발췌

현지사에 와서야 알게 된 불교, 그리고 진정한 가르침/가피담

조선조 제22대 정조대왕 때의 이야기/전생담

 조선조 제22대 정조대왕 때의 이야기


조선조 제22대 정조대왕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씨 조선 제22대가 정조왕인데, 그 정조대왕 때의 일입니다. 정조대왕이 후사(後嗣)가 없었어요. 아드님(원자, 세자)이 없었어. 그래서 이 분이 항상 아드님 갖기를 원했습니다. 하루는 우리나라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미복(微服)을 하고 민정을 나갔습니다. 왕의 복장이 아닌 보통사람들 옷으로 갈아입고 내관 한 사람을 대동하여 밤늦게 까지 서울 장안을 주~욱 돌아다니면서 살피다가 남산을 올라갔답니다.

남산에서 보니까 바로 앞 초가삼간집에서 서기광명(瑞氣光明)이 뿜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정조대왕이 볼 때에 무지개 색깔 비슷한 서기(瑞氣)가 뻗쳐있어요. 그래서 예삿일이 아니다 해가지고 내관을 시켜서 ‘그 초가삼간을 방문하도록 하고, 그리고 그 서기(瑞氣)가 뻗친 그 방에 누가 머물고 있는 가를 알아보고 오너라’ 했더니, 내관이 살펴보고 와서 아뢰기를 ‘대구 동화사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용파'라는 스님이 한양에 올라와서 그 집주인이 신도였든지 방 하나를 얻어서 주무시고 있습니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왕이 그 스님을 불렀습니다.

그 스님을 딱 보니까 한 눈에 ‘아! 큰스님이구나.’ 할 정도로 기품이 당당하고, 눈이 공부한 맑은 눈이었습니다. 그리해서 그 스님에게 ‘아무 날 입궐을 해서 나를 찾아라’ 하고 입궐하도록 했어요. 그 스님이 무슨 일인가 하고 약조한 날짜에 입궐을 해서 왕을 배알(拜謁)하게 되었어요. 왕이 ‘내가 후사가 없으니까 고민이다. 후사가 없으면 안 되니까 당신의 법력으로 내 고민을 풀어 줄 수 없겠소?’ 하니까, '용파'스님이 자기의 능력 가지고는 안 되겠어. 그런데 자기가 잘 아는 큰스님이 있었어요.

그 큰스님 법명이 '농산'이어. '농산'이라고 하는 큰스님을 자기가 잘 알고 있어. 그래서 왕한테 말씀드리기를 ‘제가 이것을 숙제로 알고, 저에게는 도반이 있는데 나보다도 법력이 출중하니까 만나서 상의를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농산'스님은 그때 한양 장안의 '금선암'이라고 하는 암자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어요. 이 '농산'이라고 하는 큰스님은 어떤 분이냐? 금강산 '만행암'에서 평생을 주력(다라니)으로 득도를 했어요.

그 후 전라도 장흥에 있는 고금도라는 섬에 가서 천일기도를 목표로 하고 공부를 했답니다. 쌀은 물론 아무것도 없이 무인도인 고금도에 들어가서 천일 동안 공부를 하는 거예요. 다만 부처님에 대한 믿음만 가지고 고금도를 갔지요. 석화를 따고, 산딸기를 따먹고 하면서 천일기도를 하는데 한 해가 지났어요. 한 해가 지나고 보니까 뜻 밖에도 배 한척이 표류하다가 고금도에 기착을 했어요.

가서 보니까 뱃사공은 없고 쌀가마니가 배에 가득 실려 있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주인이 나타나질 않았답니다. 그래서 그 쌀을 양식으로 삼아 천일을 다라니 주력을 했습니다. 그 결과 도통을 했어요. 크게 신통을 얻었답니다. 신통을 얻어가지고 배도 없이 육지를 나올 수 있었어요. 바다 위를 걸어가지고  육지로 나온 스님이어요. 그 분이 '농산'스님이어요. '용파'스님은 '농산'스님하고 잘 알아요. 도반이었습니다.

그래서 '용파'스님이 '농산'스님에게 찾아갔습니다. '용파'스님이 한양의 수락산 내원사에다가 방 하나를 얻어 놓고, 한양의 세금동에 있는 금선암에서 주석하고 있는 '농산'스님을 찾아가 상의를 했어요. ‘나라에 후사가 없으니까 우리가 100일 기도를 합시다. 정조대왕의 후사를 이을 아드님을 낳을 수 있도록 우리가 100일 기도를 해드립시다.’ 하니까 '농산'스님도 쾌히 승낙을 했어요. 그래서 '농산'스님은 세금동 금선암에서 100일기도를 입재 했고,   '용파'스님은 수락산 내원사에서 100일 기도 입재를 했습니다. 100일이 되어 회향을 했는데 왕궁에서는 잉태 소식이 없어요.

그러니까 중전이나 후궁들한테 잉태 소식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다시 '농산'스님하고 '용파'스님이 만나서 ‘100일 기도를 한 번 더 하자’고 하여 또 100일 기도를 더 했습니다. 또 100일 기도를 했지만 200일이 지나가도 아무 소식이 없어요. 그래서 아주 괴로워하다가 '농산'스님이 '용파'스님을 앉혀놓고 결심을 했어요.

‘내가 정조대왕 다음 대를 이을 아드님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용파'스님에게 자기의 결심을 편지로 적어서 왕한테 올려주라고 하고, 어느 날 기도를 마치고 목욕재계한 후 옷을 갈아입고 좌탈입망을 했습니다. 앉아서 가버렸다고요. 그러니까 정조대왕의 후사가 되려고 좌탈입망한 것이지요.

그 영혼체가 이제 들어가려고 하는 거예요. 정조대왕이 중전 혹은 후궁하고 합방하는 날 입태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좌탈입망 할 때 정조대왕의 후궁이 있었는가 봐요. 원빈 박씨라고 그래요. 원빈 박씨의 꿈에 '농산'대사가 연을 타고 입궐하는 꿈을 꾸었어요. 그리고 자기 방으로 드는 꿈을 꾸었어. 그러면서 입태(入胎)를 하였고, 10달이 차서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 아기가 조선조 제23대 순조대왕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여러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으로 되어가는 거예요. 인연으로 되어가요. 또 업이 모든 것을 창조 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들은 생각이 있잖아요.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한 생각이 중요한 거예요. 한 생각, 가령 ‘내가 정조대왕의 후사가 되어서 다음 생에 태어나 이 세상을 잘 다스리는 왕이 되리라’ 하는 한 생각, 이 한 생각이 중요한 거예요.

한 생각이 천당도 만들고, 지옥도 만드는 거예요. 이게 불교입니다. 생각 있는 사람들의 그 한 생각이 중요한 거예요. 저놈을 내가 죽여야 되겠다고 하는 한 생각, 이 생각을 잘못하면 사람을 죽이는 거예요. ‘나는 기어이 윤회생사를 벗어나야 되겠다. 부처님 회상을 만났을 때 윤회생사를 벗어나야 되겠다.’ 이 한 생각이 윤회생사를 벗어날 수 있도록 여러분을 이끄는 거예요.

그 한 생각이 대단히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일체유심조′라고 합니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요. 인연 따라 모든 것은 되어갑니다. 업이 모두를 만들어요.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연기법(연기론)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 두어야 됩니다. 이게 불교입니다.


출처/현지사 2009.6.30.화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 법문중에서 발췌


이조 선조대왕 때 '권율'이라는 재상이 있었습니다/전생담

 이조 선조대왕 때 '권율'이라는 재상이 있었습니다


 선조대왕 때 '권율'이라는 재상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이순신'장군하고 라이벌이었던 장군이기도 했습니다.   '권율'장군에게는 두 사위가 있었어요. '신립'이라고 하는 장군이 있었고,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과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을 알지요?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 이분이 '권율'장군의 사위였어요.

이 두 사람이 자기의 장인인 '권율'장군을 만났는데 '권율'장군이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었어요. '신립'장군은 당초에 그 상(얼굴 모양)이 원만했답니다. 원만하고 부귀를 누릴 만한 상이었어요. 그런데 자기의 큰사위인  '신립'을 보니까 요귀(妖鬼)와 사기(邪氣)가 끼어있어요. 그래서 저 사위가 근래에 무슨 짓을 했을까 하고 궁금해 했단 말이어요. 그래서 '신립'에게 물어 봅니다. ‘자네는 요즘 특별히 무슨 일이 있는가?’하고 물어보니까, '신립'이 대답하기를

‘예, 장인어른, 제가 강원도 산속에 달포 전에 사냥을 갔었습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을 만났습니다. 산중에서 길을 잃고 하룻밤 머물 집을 찾고 있었는데, 뜻 밖에도 집 한 채를 발견하고 그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 집을 찾아가서 주인을 찾으니까 아무도 없고, 소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나오더군요.

그 소복을 한 젊은 여자가 '신립'장군을 보고 울면서 근래에 일어났던 자초지종을 주~욱 이야기 하는데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자기 아버지가벼슬을 높이 살았는데 어떻게 당쟁에 휘말려가지고 세상이 싫어서 낙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산골에다가 집을 지어가지고 전부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를 하면서 그 많은 식솔(종)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종들 가운데는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센 사내종이 있었는데, 그 사내종이 자기의 아버지한테 딸을 달라고(딸한테 장가를 들겠다고)하니 아버지가 펄쩍 뛰었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노발대발해가지고 여러 종들에게 ‘저 못되고 힘센 종놈을 나무에다가 묶어 놔라’ 해가지고 나무에다가 묶어 놨답니다.

그런데 그 종놈이 어찌나 힘이 세던지 저녁에 묶은 밧줄을 풀고 나와서 아버지 어머니 종들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 장군님! 나를 좀 보호해 주소서. 어쩌면 오늘 저녁이나 혹은 내일 저녁에 나타나서 나를 죽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살려 주소서 하고 청하더라 그거요.

그래서 '신립'장군이 가만히 들어보니까 너무도 해괴한 일이고 동정이 가고 해서 ‘아! 그러냐.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그날 저녁에 그 집에서 자게 되었습니다. 예측한 대로 그 못된 종놈이 칼을 들고 들어오는데 그것을 보고 '신립' 장군이 어렵잖게 종놈을 처치해버렸습니다. '신립'은 장군이잖아요. 몇 십 명도 문제가 아닌 거예요.

그 종놈을 처치하고, 이튼 날 이제 나는 갈 길을 가야 되는 몸이어서 떠난다고 하니까, 그 처녀가 '신립'장군한테 매달리면서 ‘나를 보호해 주소서. 나를 살려 주시옵소서. 나를 책임져 주세요.’하고 그렇게 애원하더라 그거요. 그런데 그 '신립'이 도덕적으로 상당히 깨끗했던 모양이에요. 자기 부인이 있는데 허락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갈 길도 바쁘고, 또 집이 있고, 그러니까 다른 인연을 찾으십시오. 내가 그 못된 놈을 처치했으니까 나는 가야 된다’고 하면서 붙들고 사정하는 그 여자를 뿌리치고 왔답니다. 이제 상당히 길을 걸어 왔는데 그 처녀의 비명소리가 산천을 흔들더라 그거예요. 그 비명소리가 나서 돌아보니까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어요. 다시 그 처녀의 집에 가보니까 그 여자가 자기 집에다가 불을 놓고 죽어 버렸다 그거예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라고 장인인 '권율'장군한테 말씀을 드렸습니다.’

'권율'장군이 잘 봤지. 이 '신립'장군은 평소에 원만하고 부귀를 갖춘 상이야. 그런데 지금 요귀가 끼어 있거든. 그래서 '권율'장군이 ‘아! 그랬었구나’ 하는 것을 짐작을 했습니다.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한테는 또 무슨 일이 있었느냐? 오성이라는 사람은 귀인의 상은 아니지만 얼굴에 사기(邪氣)가 있었어요. 그런데 사기(邪氣)가 없어져 버렸어. 오성을 보니까 얼굴에 나타났던 요귀(妖鬼)없어져버렸단 말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하고 물어보니까 오성이 대답하기를,

‘장인어른, 저는 충청도 천안 지방을 주~욱 돌아다녔었는데, 하루는 날이 저물어 가지고 어느 주막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요 잠이든 한밤중에 방문이 부스스 열리더니 30살 넘어 보이는 처녀가 다짜고짜로 달려듭디다. 너무도 엉겁결에 벌어진 일이라 꼼짝을 못하고 당했습니다. 그 처녀가 ‘아! 됐다’ 하면서 그 자리에서 참 기묘하게도 나뒹굴더니 기막히게도 급살을 해서 죽어버렸습니다. 그 추녀(醜女)는 그 지방에서 소문난 추녀였었는데 아무도 데려가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가끔 저녁이면 그 주막에 나타나서 손님들한테 소원을 풀어달라고 애원을 했던 추녀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장인은 ‘아! 그랬었구나. 그러니까 자네 얼굴에 평소 사기(邪氣)가 돌았었는데 그 사기(邪氣)가 싹 없어져버렸어.’라고 말했습니다.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의 얼굴에 사기(邪氣)가 돌았었는데 그 사기(邪氣)가 전부 없어져 버렸어. 여러분, 왜 없어졌겠습니까? 그 여자(추녀)가 가져가는 거예요. 여러분! 이치가 있습니다.

남자들이 함부로 처녀나 유부녀를 강제로 추행을 하면 그 당사자의 액운을 가져갑니다. 그런 과보가 있습니다. 그 처녀를 그냥 무정하게도 떼어 버리고 자기 길로 왔던 '신립'은 임진왜란 당시 탄금대에서 전사를 했고, 이항복은 나중에 정승까지 올라갔습니다. 일생을 잘살았다는 거예요.

우리 신도 분들, 우리는 기어이 윤회를 벗어나야 돼요. 지옥이나 짐승 몸을 받아 가면 큰일입니다. 그러면 절대로 안 됩니다. 여러분, 지금이 정말로 좋은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살려야 됩니다. 석가모니불을 간절하게 염하면서 발원을 해야 됩니다. 욕심을 가지고 하면 안 됩니다. 세간적인 욕심을 가지고 하면 안 됩니다. 

출처/현지사 2009.6.30.화 큰스님 춘천 법문 중에서 발췌




2022년 8월 20일 토요일

부처님의 돌봄으로 완치된 건강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삽니다./신앙생활

옛날 당나라 시대 때 /전생담

 옛날 당나라 시대 때 


옛날 당나라 시대 때, 1200~1300년 전쯤 되죠. 어느 선비가 군인으로 징발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싸우다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선비가 포로의 신세가 되어서 강제 노역을 당하니까 살 수가 없습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 처자가 그립습니다.

차라리 내가 탈출하다 죽을망정 내가 탈출해야 산다고 하여 기회를 벼르다가 탈출합니다. 산을 건너고 강을 건너길 며칠, 밤으로, 밤으로 탈출합니다. 자기 고국을 향해서. 이제 며칠이 됐어요. 한적 강을 만나서 발을 담그고 이제 휴식을 취합니다. 한참 휴식을 취하는데 저기 산 쪽에서 어느 여인이 걸어옵니다.

그래서 유심히 보니 몽매(夢寐)에도 그리워했던 자기 부인입니다. 자기 부인이 자기 쪽으로 걸어옵니다. 그래서 쏜살같이 달려가서 부둥켜 웁니다. 이제 고국을 향해 걸어갑니다. 날이 어두워 주막을 찾아서 방을 하나 얻습니다. 그래서 3일 밤낮을 지냈습니다.

고국의 소식을 듣고 새로 사랑하는 그 감정, 회포를 풀고 이제 집으로 가자. 고향을 향해 걸어오는데 그 부인 하는 말이 ‘꼭 내가 할 말이 있습니다. 서방님, 사실 나는 인간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당신이 그리워서 당신 있는 곳을 기도하며 찾아왔습니다. 나는 죽은 지 사실 3년이 됐습니다. 우리 고향도 적국에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적국에 끌려가다가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다 도저히 붙잡힐 것 같아서 깊은 강물 속으로 정절을 지키기 위해 뛰어내려 자살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3일후에는 우리 고향 어느 마을 어떤 사람의 따님으로 태어날 거예요.

3일 후에 찾아오세요.’ 하더니 홀연히 사라졌어요. 이 선비가 너무너무도 부사의하고 믿기지 않고 분명히 자기 무릎을 꼬집어도 아프고 현실이고... 그래서 3일이 있다가 부인이 일러준 그 사람 집을 찾았습니다.

찾았는데 그 아이가 태어난 지 3일이 됐어요. 계집이 태어났어요. 그 집에 후손이 없어요. 자손이 귀했어요. 그래서 자초지종을 주인을 찾아서 말했습니다. 주인도 놀랄 수밖에.

그런데 그 아이가 태어나서 3일간 울더니 그 남자가 가서 이야기하니 전말을 이야기할 때 울음을 그칩니다. 그 꼬마 아저씨가 이상한 일이라고 ‘당신 어디 가지 말고 데릴사위로 사시오.’ 그러자고.. 데릴사위로 16년을 삽니다. 꼬마 아이가 16살이 되어 날을 받아 결혼을 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해서 해로(偕老)했다고 합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느냐하면 사람이 죽으면 끝이 아니다하는 것을 일러주기 위해서입니다. 나이 많은 할머니분들 스님 법문, 격이 높은 법문 많이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스님 말씀 이해하십시오.

여러분은 얼마 안가면 죽지요. 몸뚱이 입장에서는 없어지고 죽지만 몸뚱이에서 몸뚱이를 의지하고 사는 그 영혼체는 죽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명이 다하건 다하지 않던 간에 그 영혼체는 나옵니다. 이 집에서 살 수 없으면 나옵니다. 나와서 요 놈이 두 길을 가는데 명부로 들어가느냐 못 들어 가느냐입니다.

착이 많으면 못 들어갑니다. 착이 많다는 것.. 우리 할머니들은 여자 분들은 정이 많아요. 달리 말해 착이 많아요. 외동아들이나 남편이 걸려서 어디 놀러가도 제대로 놀지도 못해요. 착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착이 강하면 명부에 못 들어갑니다. 명부에 못 들어가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여러분 자기를 생각할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혼자 갑니다. 남편, 자식이 아무리 잘해주어도 나 혼자 가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정리, 생각을 수습할 때에요.


출처/법문집2권중  2007년 6월 27일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중 발췌



천도재 하면 이런 사람 있어요.(씨받이)

 천도재 하면 이런 사람 있어요.(씨받이) 



자기가 자식이 없으니까 씨받이 여인을 들여와요. 그래서 아들을 딸을 볼 때까지 씨받이와 삽니다. 아들 낳아주니까 논 열마지기 준다고 약속합니다.

나중에 아들을 낳았어. 열 마지기를 줘요. 정실부인은 안 그래도 눈에 가시였는데 돈까지 줄 수 있나 해서 보통 여자쪽에서 청부살인합니다.

거의 다 죽습니다. 돈 보퉁이를 안고 가다가 한적한 곳에서 죽습니다.

돈도 뺏기고 목숨도 뺏기고... 이렇게 죽으면 그 한이 하늘을 찔러요. 무주고혼입니다. 명부 절대 못 들어갑니다.

그 마음이 어려요. 물이 얼듯이. 그래서 백 겁, 천 겁이 흘러도 안 움직입니다. 복수심만 있어요. 그 마음만 있어요.

그래서 오직 기회만봅니다. 상대만 죽이나, 그 집 자식 전부입니다. 줄초상 만듭니다. 그런데 그 대에 자기 뜻을 못 이루면 자기가 무주고혼으로 있을 때 저 사람이 사람 몸을 받으면 그 사람 몸에 들어갑니다.

간이나 ,폐, 위, 쓸개에 들어가서 살과 피와 하나가 됩니다. 언젠가 도인이 천도재하면 여자 몸에서 제거, 제령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완전히 그 사람 피, 살이 되어버립니다. 그 빙의된 것 끄집어내기 힘들어요. 여간 작업해야 합니다.

그런데 발버둥 칩니다. 나를 왜 잡아가냐고, 나는 이렇게 죽었는데 왜 공평하지 않나 그겁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그렇죠.

그래도 여러분이 현지사를 믿고 그렇게 해서 천도재를 의뢰하면 할 수 없이 명부에 넣습니다. 명부에 들어가기 전에 부처님께 발버둥을 쳐요.

그런 사람들은 하늘로 올려줘야 합니다. 하늘가면 풀이지지만 안 그러면 안 풀어집니다. 그 여자 죽이면 또 아들로, 남편으로... 다 잡아갑니다. 그래서 줄초상납니다.

어쨌든 우리는 그런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하나의 실례를 든 겁니다.
 

출처/법문집2권중 - 현지사 2007년 4월 29일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중 발췌



중국 신주일보(神州日報)에 실린 실화/전생담

 중국 신주일보(神州日報)에 실린 실화



다음은 1916년 2월26일자 중국 신주일보에 실린 실화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김씨 성을 가진 이야기와 거의 비슷합니다.

중국 산동성 어느 마을에 최천선 이라고 하는 석공이 있었어요.

그 분이 한 여름인데도 호열자를 앓으니까 어머니가 땀을 푹 내라고 이불을 덮어 씌워 주었답니다. 그 어머니가 큰 실수를 했지요.

그로인해 최천선이가 숨이 막혀서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앞의 김씨 이야기처럼 최천선이가 명부를 갔는데, 명부에서 아직 명이 남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승으로 돌아왔는데 최천선의 집안에서는 이미 최천선이를 매장해 버렸어(묘를 써버렸어.) 이렇게 1․2․3․4번 영체가 의지 처를 얻지 못하면 무고혼이 됩니다. 그러니까 자꾸 의지 처를 만나려고 해요.

역시 최천선이도 자기가 살던 집근처에서 시작하여 중국 일대를 샅샅이 뒤지다가 월남쪽까지 내려갔어요. 안남(安南, 베트남)쪽까지 내려갔어.

베트남 쪽에서 막 죽은 유씨 성을 가진 몸속으로 들어 가버렸다고요. 묘금도 유(劉)자가 있습니다. 유건중이라고 하는 막 죽은 몸속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거기서(유건중 집에서) 눈을 뜨고 몸을 움직이고 하니까 그 집안 역시 부인이며 자식들이 아버지가 살아났다고 아주 좋아라고 했단 말이에요. 아버지는 살아났는데 전혀 아버지가 아니어요. 이거 참 서로가 아주 고약스럽지요.

이 사람은 자기의 1․2․3․4번 영체가 들어갔기 때문에 다 알아요. 자기는 산동성에 살고 있던 석공 최천선이라는 것을 알아요. 그러나 여기 유건중의 집안 내력이라든지, 유건중이가 살았던 기억은 없어요. 모르니까.

몸뚱이가 다르니까. 그래서 글씨로 자기의 신분을 밝힙니다. ‘나는 산동성에서 살았던 석공 최천선이라는 사람인데 호열자를 앓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가 땀을 푹 내라고 두꺼운 이불을 덮어 씌워주는 바람에 질식해서 죽었답니다.’ 라고 한자로 썼어요(중국은 한자를 쓰니까). 또한 베트남도 한자입니다.

그러니까 ‘아! 그런가 보다’해서 이 불가사의한 일이 소문에 꼬리를 물고 널리 알려져 신문에 보도 되면서 세계가 놀란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하여 기자들이나 그 방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조사를 하고 확인을 해보니까 사실이었답니다.

여러분, 이 몸뚱이의 주인공은 영혼체라는 사실, 인간 영혼의 실체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여러 기성종교, 세계의 큰 종교, 불교에서도 선불교라든지, 저기 남방불교(위빠사나 불교) 등에서는 이것을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 점에 대해서 ‘좀 투철히 알아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죄는 안 지을 것이다.

이걸 알면 이기심도 욕심도 적어질 것이고, 정법을 듣는데 있어서 아주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혼체에 대한 상식을 여러분들이 투철히 알았으면 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출처/현지궁 현지사 2009.9.26. 일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 법문 中 발췌





기미(己未)만세운동이 있던 1919년 이야기/전생담

 기미(己未)만세운동이 있던 1919년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쯤이니까 기미(己未)만세운동이 있던 1919년 이야기입니다. 해인사에 '환경'이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성은 임씨였습니다. '임 환경'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 절의 감원(監院: 암자나 교당을 감찰하는 역승. 院主라고도 함.)이었어요.

하루는 경상북도 지례군 지례면 옹팽리 라는 마을에 사는 김재선(金在善)이라는 사람이 개를 한 마리 데리고 와서 개를 업고 해인사 도량을 다녔어요. 이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해인사 감원(監院) '환경'스님이 ‘여기는 성지이기 때문에 개를 데리고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개를 업고 다니는 것이 뭐냐’며 주의를 주니까, 김재선이가 그 사연을 이야기 했습니다.

‘스님! 사연이 있습니다. 들어봐 주십시오. 작년 5월쯤 우리 어머니가 별세했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요.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4개월쯤 되어 집에서 기르던 개가 희한하게도 새끼를 한 마리 낳았습니다. 탐스럽고 귀여워서 예쁘게 길렀는데 아주 총명해요. 그래서 사냥개를 만들려고 어느 날 귀를 쨌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나서 ‘이 불효 놈아 내가 선업을 쌓지 못하고(착하고 바르게 살지를 못하고) 업을 짓고 살아서 좋은 곳은 가지 못하고 이 개의 몸을 받았다.

그런데 사냥개를 만들려고 귀를 째버렸으니까 내가 너무 아프다.’라고 하거든요. 깜짝 놀라 깨어보니까 꿈이거든요. (그 착한 아드님이 김재선(金在善)입니다. 김재선이가 부인과 뜻이 맞았어. 그걸 믿어. 그래서 이제 먹이도 잘 먹이고, 그날부터는 어머니 대우하듯 했답니다.) 그런데 또 꿈에 그 어머니가 나타나서 ‘아들아! 내 평생  소원이 두 가지가 있었단다.

그 소원을 이루지 못했구나. 너희들이 내 소원을 이루어 다오. 첫째, 기차를 한번 태워다오. (지금 90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 해인사라고 하는 절에 팔만대장경을 구경하는 것이란다.’ 이 두 가지가 소원이라는 거요. 그래서 하루는 거기서 가까운 김천역에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기차를 태워드렸답니다. 그 다음에 팔만대장경을 어머니에게 구경 시켜드리려고 해인사에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지이하 삼직 스님들이 너무도 희유한 이야기이고, 이것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죽은 사람이 짐승도 되는 구나. 사람이 짐승(열두 띠 짐승 등)도 된다”는 부처님말씀을 확인한 것이지요. 그 부처님의 말씀을 확실히 경험한 그 젊은이(직접 개를 데리고 온 그 젊은이)의 말을 듣고 감복했습니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대장경 판각에는 한 사람 또는 몇 사람 가지고는 안 들어갑니다. 그렇지만 딱 열어서 전부 구경을 시켜줬답니다. 어느 날 그 어머니가 또 다시 꿈에 나와서 ‘이제 내가 두 가지 소원이 이루어졌으니까 천도재를 해다오.

이 해인사 큰절에서 내가 천도재를 받고 싶다. 그러면 좋은 데로 갈 것 같다. 그러니 천도재를 좀 해다오.’라고 말씀을 했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위해 해인사에서 49재를 했어요. 천도재를 모셨어요. 천도재가 다 끝난 해인사에서 상당히 정성들여 칠재 내지 49재를 했는가 봐요.

어느 날 아침에 깨어서 어머니를 보려고 밖에 나갔더니 그 어머니 개가 죽어있었어요(죽었어요). 또 꿈에 ‘좋은 데로 갔다.’ 그거예요. 그러니까 ‘아들아! 정말 고맙구나.’ 하는 이것은 실화입니다.

여러분! 지옥도 있고, 그리고 우리가 짐승세계로도 빠지고, 그래서 짐승이 되어 나오고 합니다. 여러분, 절대로 의심하지 마세요. 스님은 10년 전부터 그 많은 천도재를 주관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을 자세히 압니다. 천도재 때 선대 영가님을 적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너무도 너무도 자세히 압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전혀 모릅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철학을 하고, 종교를 했다는 교수 석학들도 사람이 죽어서 지옥을 가고, 또 짐승도 되고 하는 이것을 웃기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거 웃기는 이야기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사람이 짐승 몸을 받습니다. 그리해서 짐승 몸도 한 번 죽었다가 받는 것이 아니고 닭 장사 하는 사람의 경우, 전생에 닭을 많이 죽인 사람은 23생을 닭으로 태어나라.

이런 것이 나옵니다. 여러분에게 언젠가 말씀해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닭으로 끝나나? 이제 또 구렁이로도 오고(수십 생으로 오고), 또 다른 동물로도 오고, 그런 후에 사람 몸을 받아옵니다. 우리가 지은 그 업은 태산만 합니다. 여러분의 업장은 태산만 합니다.

그 태산만한 업장을 금생에 부처님 교단을 만났을 때에 모두 소멸해야 됩니다. 소멸하지 않으면 삼악도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한 5년 동안 동영상 법문을 한 것입니다. 100회째니까 5년이 되지요. 앞으로 많은 법문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 그때마다 모두 나오시고, 여러분만 나오실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말을 듣는 사람을 데리고 나오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눈에는 안 보이지만, 그 많은 업장이 벗겨져 나가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런 축복을 받으시고, 그러다가 보면 여러분들이 돌아가시더라도 절대다수가 하늘세계로 갈 것입니다. 스님이 이것을 힘주어서 말씀드립니다.


출처/현지사 2009.10.11.일 자재 만현 큰스님 부산법문 중 발췌

2022년 8월 19일 금요일

부처님 오신 날 맞이 현지사 춘천본사 연등울력

간절히 바라던 대구분원 불사 기도성취 ㅣ 단월들의 신심나는 이야기

기미(己未)만세운동이 있던 1919년 이야기/전생담

 기미(己未)만세운동이 있던 1919년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쯤이니까 기미(己未)만세운동이 있던 1919년 이야기입니다. 해인사에 '환경'이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성은 임씨였습니다. '임 환경'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 절의 감원(監院: 암자나 교당을 감찰하는 역승. 院主라고도 함.)이었어요.

하루는 경상북도 지례군 지례면 옹팽리 라는 마을에 사는 김재선(金在善)이라는 사람이 개를 한 마리 데리고 와서 개를 업고 해인사 도량을 다녔어요. 이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해인사 감원(監院) '환경'스님이 ‘여기는 성지이기 때문에 개를 데리고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개를 업고 다니는 것이 뭐냐’며 주의를 주니까, 김재선이가 그 사연을 이야기 했습니다.

‘스님! 사연이 있습니다. 들어봐 주십시오. 작년 5월쯤 우리 어머니가 별세했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요.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4개월쯤 되어 집에서 기르던 개가 희한하게도 새끼를 한 마리 낳았습니다. 

탐스럽고 귀여워서 예쁘게 길렀는데 아주 총명해요. 그래서 사냥개를 만들려고 어느 날 귀를 쨌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나서 ‘이 불효 놈아 내가 선업을 쌓지 못하고(착하고 바르게 살지를 못하고) 업을 짓고 살아서 좋은 곳은 가지 못하고 이 개의 몸을 받았다.

그런데 사냥개를 만들려고 귀를 째버렸으니까 내가 너무 아프다.’라고 하거든요. 깜짝 놀라 깨어보니까 꿈이거든요. (그 착한 아드님이 김재선(金在善)입니다. 김재선이가 부인과 뜻이 맞았어. 그걸 믿어. 그래서 이제 먹이도 잘 먹이고, 그날부터는 어머니 대우하듯 했답니다.) 그런데 또 꿈에 그 어머니가 나타나서 ‘아들아! 내 평생  소원이 두 가지가 있었단다.

그 소원을 이루지 못했구나. 너희들이 내 소원을 이루어 다오. 첫째, 기차를 한번 태워다오. (지금 90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 해인사라고 하는 절에 팔만대장경을 구경하는 것이란다.’ 이 두 가지가 소원이라는 거요. 

그래서 하루는 거기서 가까운 김천역에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기차를 태워드렸답니다. 그 다음에 팔만대장경을 어머니에게 구경 시켜드리려고 해인사에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지이하 삼직 스님들이 너무도 희유한 이야기이고, 이것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죽은 사람이 짐승도 되는 구나. 

사람이 짐승(열두 띠 짐승 등)도 된다”는 부처님말씀을 확인한 것이지요. 그 부처님의 말씀을 확실히 경험한 그 젊은이(직접 개를 데리고 온 그 젊은이)의 말을 듣고 감복했습니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대장경 판각에는 한 사람 또는 몇 사람 가지고는 안 들어갑니다. 그렇지만 딱 열어서 전부 구경을 시켜줬답니다. 어느 날 그 어머니가 또 다시 꿈에 나와서 ‘이제 내가 두 가지 소원이 이루어졌으니까 천도재를 해다오.

이 해인사 큰절에서 내가 천도재를 받고 싶다. 그러면 좋은 데로 갈 것 같다. 그러니 천도재를 좀 해다오.’라고 말씀을 했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위해 해인사에서 49재를 했어요. 천도재를 모셨어요. 천도재가 다 끝난 해인사에서 상당히 정성들여 칠재 내지 49재를 했는가 봐요.

어느 날 아침에 깨어서 어머니를 보려고 밖에 나갔더니 그 어머니 개가 죽어있었어요(죽었어요). 또 꿈에 ‘좋은 데로 갔다.’ 그거예요. 그러니까 ‘아들아! 정말 고맙구나.’ 하는 이것은 실화입니다.

여러분! 지옥도 있고, 그리고 우리가 짐승세계로도 빠지고, 그래서 짐승이 되어 나오고 합니다. 여러분, 절대로 의심하지 마세요. 스님은 10년 전부터 그 많은 천도재를 주관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을 자세히 압니다. 천도재 때 선대 영가님을 적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너무도 너무도 자세히 압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전혀 모릅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철학을 하고, 종교를 했다는 교수 석학들도 사람이 죽어서 지옥을 가고, 또 짐승도 되고 하는 이것을 웃기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거 웃기는 이야기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사람이 짐승 몸을 받습니다. 그리해서 짐승 몸도 한 번 죽었다가 받는 것이 아니고 닭 장사 하는 사람의 경우, 전생에 닭을 많이 죽인 사람은 23생을 닭으로 태어나라.

이런 것이 나옵니다. 여러분에게 언젠가 말씀해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닭으로 끝나나? 이제 또 구렁이로도 오고(수십 생으로 오고), 또 다른 동물로도 오고, 그런 후에 사람 몸을 받아옵니다. 우리가 지은 그 업은 태산만 합니다. 여러분의 업장은 태산만 합니다.

그 태산만한 업장을 금생에 부처님 교단을 만났을 때에 모두 소멸해야 됩니다. 소멸하지 않으면 삼악도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한 5년 동안 동영상 법문을 한 것입니다. 100회째니까 5년이 되지요. 앞으로 많은 법문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 그때마다 모두 나오시고, 여러분만 나오실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말을 듣는 사람을 데리고 나오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눈에는 안 보이지만, 그 많은 업장이 벗겨져 나가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런 축복을 받으시고, 그러다가 보면 여러분들이 돌아가시더라도 절대다수가 하늘세계로 갈 것입니다. 스님이 이것을 힘주어서 말씀드립니다.


출처/현지사 2009.10.11.일 자재 만현 큰스님 부산법문 중 발췌



중국 명나라때 이야기/전생담

 중국 명나라때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600~700년 전, 중국 명나라 때 이야기입니다. 성씨는  '방'이요 이름은 '효유', '방효유'라고 하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방효유의 아버지가 어머니 상(喪)을 당해서 묘 터를 잡았어요. 그러니까 돌아가신 분은 방효유 입장에서 보면 할머니지요.

이제 묘 터를 파서 그 분의 시신을 묻게 되겠지요. 묘 터를 잡아 놓고 장례를 준비 중인데 꿈에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가지고 ‘3일만 여유를 주시오. 3일만 여유를 주시오.’라고 하며 간청을 했답니다.

깨어보니까 꿈이거든요. 그래서 ‘이건 뭐 개꿈이겠지’ 하고 그대로 자기의 어머니를 그 묘 터에다가 매장을 하려고 그 묘 터를 파보니까 뱀들이 드글드글 해. 그 뱀들을 모두 태워 죽여 버렸어요. 그런데 그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이

 ‘3일만 기한을 달라. 내 자손이 800이나 되는데 3일만 주면 전부 옮겨 줄 것이다. 그러니까 3일만 기한을 주시오. 만약 당신이 내 말을 들으면 크게 좋은 일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큰 액운이 닥칠 것이오.’ 이런 말을 했어요.

그런데 이 방효유의 아버지가 그걸 믿지 않고 묘 터를 파 보니까 그 많은 구렁이(뱀)들이 있는데 다 잡아다가  불에 태워 죽여 버렸어요.

나중에 어떻게 되었느냐? 그 후로 방효유가 한림학사 까지 되었습니다. 한림학사라고 하면 한직(閒職)이지만 나라에서 알아주는 석학이어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방효유가 모반(반역사건)에 연루가 되었답니다. 그 당시 왕(천자)이 성조예요. 성조가 화를 내어가지고 ‘이 놈은 10족을 멸해라’라고 명한 거예요. 10족을 멸하고 보니까 약 800명이 되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짐승(동물)중에서 사람의 영체가 들어가는 동물을 알지요. 뱀은 들어가지요. 그런데 우리는 지난날 그 많은 업을 지어놓고 자기는 깨끗이 사는 줄 압니다.

자기는 깨끗이 사는 줄로 알아요. 아니지요. 명부에는 모든 것이 입력됩니다. 자기의 행위는, 자기의 신․구․의 삼업의 행위는 전부 명부에 입력이 되고, 그것이 입력된 것은 기록 되어서 장부로 보관 됩니다. 똑같이 내 자신의 영체에도 반영이 됩니다.

그 업의 종자는 내 영혼체에 그대로 심어집니다. 업의 종자는 절대로 썩지를 않습니다. 업의 종자는 반드시 인연 따라서 싹을 틔워 꽃을 맺고,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를 맺을 때에는 화(禍)를 당하지요(나쁜 짓을 했으면).

그래서 영혼체를 볼 정도의 수행의 경지에 오른 불과(佛果)를 증한 사람은, 스님이 가끔 이야기 하지만 저 영혼체에 쇠사슬로 묶여 있다든지 하면 ‘이제 저 사람은 곧 식물인간이 되겠구나.

또는 중풍을 맞겠구나.’ 하는 것을 압니다. 그 영혼체에 묶여있는 쇠사슬을 잘라주고, 그것을 완전히 분해시켜 버릴 수 있는 분은 오직 우리 부처님뿐입니다. 자, 합장하시고 염불을 좀 하겠습니다.


출처/현지사 2009.10.25. 일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 법문중 발췌



'소신공양(燒身供養)'이야기/전생담

 '소신공양(燒身供養)'이야기



이야기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이야기 좋아하시지요. 150년 전 경상도 어느 큰 절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그 절 주지도 역임했었어요. 그러나 뒷방에서 한평생 공부한 적도 없고, 한 평생을 다 털어서 한두 시간 염불한 적도 없고, 중생을 위해서 선업을 쌓은 적도 없고, 부처님께 선근공덕 지은 것도 없어.


이제 늙어가지고 죽을 나이가 되니까 자기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일을 한 것이 없어. 내가 지금 죽으면 큰일인데... 아무리 살펴봐도 좋은 일을 한 것은 없어. 그렇게 살아버렸어. 허송세월을 보냈구나.


내가 스님이 되어가지고 큰 절 주지도 하긴 했는데, 구체적으로 따져보니까 좋은 일 한 것은 없어. 큰스님들 법문에, 또 경에는 염불이 최고고, 경전 독송이 최고고, 다라니도 해야 되고, 참회도 해야 되고, 불사에 동참도 해야 되고, 부모님께 효도도 해야 되고 한다는데 나는 한 것이 없어. 그러니 나는 죽으면 지옥이구나. 나는 지옥에 갈 수 밖에 없구나.


이렇게 고민 고민을 하다가 무릎을 탁 쳤어요. 햐! 나는 살았구나. 무슨 생각을 하고 무릎을 쳤느냐 하면,《법화경》에 '소신공양(燒身供養)'이라는 것이 있어요. 소신공양, 여러분 중에 아시는 분이 있을 거예요. 소신공양을 하면 그 공덕은 정말로 제일의 공덕이 된다고 하는 경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의 말씀은 독소(毒素)입니다. 아닙니다. 이건 빼야 됩니다. 어쨌든 그 스님은 그걸 생각해 냈어. 어느 큰스님이 그걸 법문했다 그거요. 말씀을 했다 그거요.


한평생 공부도 안하고, 공덕도 안 짓고, 좋은 일 한 것도 없고, 착하게 산 것도 없고, 그 대신 못 된 짓은 했어. 중이면 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계율, 엄정한 계율을 많이도 파했어. 그러니 나는 이대로 죽으면 지옥을 가.

그러니까 카바를 해야 되겠는데, ‘옳다! 소신공양을 하면 되겠다.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하자.’ 그런 생각을 하고 새끼와 석유기름을 구했습니다. 새끼 아시죠? 그래서 뒷산으로 올라가가지고 결정(결심)을 했어. 뒷산에 올라가가지고 스스로 소나무에다가 묶고 석유통을 머리에 부었어.


그리고는 성냥으로 촤~악 그어대 버렸다고. 이렇게 되었습니다. 큰 절에서 밖을 나온 스님들이 어디서 연기가 무럭무럭 나오는데 ‘앗~뜨거워 앗~뜨거워...사람 살려 사람 살려...’하는데 그 목소리가 어디서 들은 목소리다 그거요. 가만히 들어보니까 노스님 목소리야. 그래서 대중들이 모두 쫓아갔지요. 가보니까 이미 숨은 멎었어요. 완전히 절명해 버렸어.

그래서 그 시신을 옮기고, 전직 주지에다가 부자 절이니까 49일 동안을 다비문대로 잘 치러줬습니다. 49재를 잘도 치러줬어요. 그런데 그 절에 정신이 실성한 어느 40대 여인이 가끔씩 들리곤 했습니다. 그 여인이 하루는 ‘앗~뜨거워 앗~뜨거워...사람 살려 사람 살려...’하면서 다닌다고요. 그러니까 대중스님들이 모두 의아해 하지요.


49재를 잘 했는데, 그러면 극락을 갔어야 되는데, 저 여자가 왜 또 저렇게 하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도 노스님 목소리 같았어요. 그런 목소리로 그렇게 외치고 다닌다고. 그래서 그 절에서 경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하는 스님들이 모여가지고 ‘우리 스님이 극락에 못 갔다. 지금 저 여자한테 빙의 됐다.



그러니까 우리가 다시 우리 스님의 천도재를 모셔주자.’라고 했어. 그런데 천도재를 모셔줄 사람이 없어. 공부를 많이 한 스님들이 전국의 큰스님들을 두루 살펴봐서 어떤 스님을 모셔다가 ‘49재를 해 주십시오’하고 청해야 되는데 마땅한 사람이 안 잡혀. 공부를 많이 한 스님이나, 연륜이 많이 쌓인 스님들은 ‘그 종단의 스님은 큰스님이 아니다. 그 큰스님은 괜찮다’ 하는 것을 다 압니다. 많이 교유하고 많이 들어보고 하니까 알아요.



그런데 ‘햐!~ 저기 어느 깊은 산에서 이름 없이 공부를 잘하는 스님이 한분 있단다.’ 이걸 전해 들었어요. 그래서 찾아갔습니다. 요청을 하니까 ‘그렇게 하지요’ 하고 승낙을 받았어요. 그래서 다시 그 미친 여자를 잡아다 놓고 49재를 모시는 거요. 49재를 잘했어. 잘하고 나니까 회향 날 그 여자가 정신이돌아왔어.



막 절을 하면서 ‘노장 이름을 대면서 내가 누구인데, 이제 나는 좋은 데로 가게 되었다. 내가 다시 사람 몸을 받아 올 때에는 정말로 큰스님이 되어야겠다. 진짜 큰스님이 되어야겠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이걸 깨달았다. 그런데 이렇게 성대하게 두 번 씩이나 49재를 모셔준 대중들한테 고맙다’ 고 하며 백배 인사를 하더랍니다.



이것이 이야기의 줄거리입니다. 이것을 스님이 점검을 합니다. 그 스님은 명부에는 들어갔어요. 명부에 들어가기는 했어. 그러나 지옥에 갔습니다. 지옥에 갔어. 소신공양, 부처님이 소신공양 받는 분입니까? 정말로 왜곡된 가르침이올시다. 이렇게 우리 절에서는 내가 이런 말을 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대전 구미 광주 전주 인근의 절에 다니시는 신도 분들로 압니다. 이런 분들한테는 오늘 처음 합니다. 안 할 수가 없지요. 바른 말을 해야지요. 바른 가르침을 전해줘야지. 여러분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정법으로 이끌어야지.



이것이 이 스님의 사명이니까 말입니다. 나는 그 동안에 무척 많은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전번 어느 때인가 ‘정말로 나 이상의 법을 아는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내 법문 말씀을 꼭 그대로 듣고 따라 주십시오’ 하고 호소했습니다. 그 미친 여자? 정신 안 돌아왔지. 일시적이었지. 사람이 미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신병환자가 되는 이유가 있어요. 그렇게 간단히 낫는 것이 아니어. 그것은 어느 생엔가(전생에)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님을 흉측스런 방법으로 시해(弑害)한 과보입니다. 아셨습니까? 내 말 이해하겠지요.



전생에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패륜적인 소행으로 칼로 도끼로 둔기로 때려서 죽인, 하늘도 땅도 용서할 수 없는 업을 지은 과보입니다.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에서는 그거 낫게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너무도 지중한 업이 가증스럽기 때문에 손을 안댑니다. 현지사에서 손을 안대는 부분이 있습니다. 문둥병, 그런 것도 손 안댑니다. 몇 가지가 있습니다. 또 몇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데 생략하겠습니다. 그 외에는 다 할 수 있습니다. 다 해드릴 수 있습니다.

출처/현지궁 현지사 2010.1.30.토 자재 만현 큰스님 대전법문 중 발췌

지장보살님 기도로 나와 가정에 찾아온 변화 ㅣ 단월들의 신심나는 이야기

150여 년 전 경기도 지역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150여 년 전 경기도 지역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 경기도 지역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어느 김씨 성을 가진 남자가 죽었습니다. 그 가족은 슬피 울면서 아버지를 매장했습니다. 그리고 삼우제(三虞祭)도 다 지내고 했는데, 어떤 남자가 자기 집으로 들어오더니 ‘모두 앉아라.


내가 사실은 너의 아버지니라.’ 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망자의 부인이며, 자식, 손주들이 의아해 하지요. 전혀 딴 사람이 와서 ‘내가 너의 아버지니라. 앉아라. 들어봐라.’ 

내가 죽은 지 얼마 되었어(얼마 되었지). 그런데 명부에서 아직도 더 살아야 된다고 보내줬어.


그래서 이승을 와보니까 내 몸뚱이는 벌써 파묻어 버렸어. 그래서 갈 곳이 없어서 헤매다가 마침 여기 집하고 얼마 떨어지지 아니한(몇 킬로, 몇 십리 정도 떨어진) 거리에 이 몸뚱이가 있더라(죽어 있더라) 그거예요. 방금 죽어 있더라 그거예요.


그래서 그 몸뚱이를 내 옷으로 갈아입고 왔다 그거예요.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도 소상하게 이 집안일을 잘 알아. 아버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일까지 다 알아. 

분명히 아버지여. 분명히 아버지인데 몸뚱이는 아니어요. 그러니까 가족들이 긴가민가(반신반의)하지요.


그 몸뚱이, 지금 아버지가 입고 있는 이 몸뚱이(옷), 이것은 누구냐? 알아보니까 박씨 성을 가진 분이었어요. 어느 고을의 박씨 성을 가진 집안에서 자기 아버지가 행방불명(실종)이 되었어.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어. 

그런데 자기 아버지 같은 분이 어느 마을의 김씨 성을 가진 집안에 나타났다고 하니까 모두 찾아 왔단 말이에요.


보니까 자기 아버지예요. 박씨 성을 가진 가족들이 자기 아버지를 찾다가 소문을 듣고 김씨 집안에 어떻게 생긴 분이 아버지라고 하며 나타났다고 하니까 박씨 집안에서 몰려왔단 말이에요. 보니까 아버지여. 

아버지! 하고 붙들고 우는데 이 사람은 김씨 성을 가진 아버지거든. 껍데기만 아버지다 그거지(껍데기는 행방불명된 박씨라 그거지). 그래서 진위여부를 가려 달라고 두 집안에서 관가에 소송을 제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출처/현지사 9.26.일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 법문 중 발췌

어떤 분의 삼생 전 이야기입니다

어떤 분의 삼생 전 이야기입니다



어떤 분의 삼생 전 이야기입니다. 어떤 여인의 삼생 전 이야기예요. 그 때도 그 여인은 대단히 예뻤습니다. 미국의 어느 중인 가정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했습니다.

 남자를 잘 만났다 싶었습니다. 남자도 잘 생기고 미남이었어요. 그 두 사람의 생활은 대단히 만족했고 행복했습니다. 그 여자는 자연스레 임신을 하게 되었고 남편은 밖에서 열심히 다녔습니다.


 이 여자는 남자가 무슨 직업인지를 알려고도 안했어요. 많은 직업이 있지요. 부동산 중개업, 사업, 기타 등등의 여러 가지 직업이 있을 겁니다. 

그 남편은 처음에는 아주 자상하고, 가정밖에 모르고, 열심히 벌어서 돈을 갖다가 아내에게 주고... 그 이상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나는 대단히 행복하게 산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냐 하고 반문할 정도로 잘살았습니다. 돈도 많고, 남편한테 사랑도 많이 받았고 해서 이 세상 누구도 부러울 사람이 없었어요. 그

러는 중에 임신을 해서 아들을 낳았어요. 아들을 낳은 지 9개월 쯤 되었는데 남편은 구속이 되어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그 남편의 죄명은 살인강도였어요. 그래서 사형선고를 받아 남편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 여자의 갈등과 고뇌는 여러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편을 잃은 충격도 충격이고, 남편이 자기를 배신한 그 배신감도 있고, 어쨌든 이 생각 저 생각 복합적으로 갈등을 했어요.


이 여자의 아이는 살인강도범의 애기예요. 그렇지요? 이 아이는 살인강도범의 아이여. 이 아이는 성장해도 출세할 수가 없어요. 

신원조회를 하니까 출세를 할 수가 없어.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나 하고 생각해 낸 것이 죽여야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목을 조르려고 하니까 그 아기가 엄마를 쳐다보고 좋아하며 방긋 웃는 그 모습에 차마 죽일 수가 없어. 몇 번 시도 했지만 안 돼. 그래서 시간이 흘러가는데 결단을 내린 거예요. 

죽일 방법을 알았어. ‘이것을 질식사 시키자. 내가 죽이는 것은 아니니까. 질식사 시켜 놓으면 내가 직접 죽이는 것이 아니잖아.’ 해가지고 이불 세 채를 가져다가 딱 덮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애기가 죽었습니다. 자기자식을 죽이면 그 과보는 무서운 거예요. 이런 큰 죄는 과보가 5가지 4가지 3가지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돼. 금생에 사람을 죽였으니까 살인범으로 징역을 살아야 되는 법적인 책임을 져야 되는 거예요. 

이런 과보가 있지요. 그리고 명부에 들어가면 지옥에 가. 사람을 죽이면 지옥으로 가. 물론 열시왕이 아주 자세하게 심리를 하겠지요.


논죄를 하지만 지옥이어요. 그것은 중지옥 이상을 갑니다. 이제 두 가지의 과보를 말씀드렸지요. 그리고 무주고혼으로 떨어질 수도 있어요. 그 다음에 지옥 벌을 다 받으면 끝나는 것이냐? 

끝나기도 하는 사람이 있지만, 아귀나 짐승세계로도 오는 사람이 많아요. 네 가지(군데)이지요. 짐승 몸을 다 받고 나서 사람으로 오는 것이지만 그런 큰 죄를 지은 사람은 하천(下賤)한 신분의 부모를 만나는 거예요.


그래서 병(病)이 오게 되어요. 다병(多病) 또는 심각한 병을 앓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다섯 가지 정도의 5중 과보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업이 그렇습니다. 물론 이 여인은 아마도 지옥, 짐승의 세계를 거쳤을 겁니다. 

이 여인이 사람으로 오니까 그 동안 기회를 보면서 복수하려고 노리고 있었던 아드님 영가가 엄마의 뱃속으로 들어간 거예요.


아드님 영가가 9개월이지만 영체로는 40대입니다. 명부로 들어갈 때에는 모든 사람들의 영체는 40대입니다. 4번 영체는 그 죽을 때의 나이 대이지요. 그러나 4번 영체는 명부로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4번 영체는 놔두고 1․2․3번 영체는 뭉쳐서 지옥으로 가는데, 이 4번 영체는 유령으로 일정기간(1~2년)을 활동하다가 소멸됩니다.


이 4번 영체는 생명체가 아니어요. 습대로 살아(돌아다녀). 스님이 유령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지요? 그런데 이 아기는 아기의 몸으로, 이건 죽었으니까 그 몸 그대로 복수를 하려고 엄마 뱃속으로 들어간 거예요. 이제 엄마가 금생에 사람으로 왔으니까요.

사람으로 온 것을 딱 보고 뱃속으로 들어간 거예요. 이 빙의는(원결은) 꼭 그 몸 안으로 들어갑니다. 몸 안으로 들어가는데 몸 안에서도 모든 장기에 같이 붙어버려요. 그건 기어이 죽는 거예요.

 그 사람을 죽여야 원결이 끝나는 거예요. 그 꼬마(애기)는 사실 아주 양순하고 업이 그렇게 지중한 애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이 4번 영체의 꼬마가 하는 말이


‘내가 이 정도로 해서 접겠다. 이 정도로 해서 과거에 내가 당한 이 서러움을(원한을) 끊겠습니다. 내가 앞으로 계속 악의를 품고 작해(作害)를 하게 되면, 또 이렇게 윤회를 하게 되면 끝없는 원결이 이어질 것 아닙니까? 이 정도로 해서 접겠다.’고 한 거예요.



출처/현지궁 현지사 2009.8.13.목 자재 만현 큰스님 부산법문 中 발췌


어느분 천도재 지내고 사례

 어느분 천도재 지내고 사례 



엊그저께 어떤 사람 천도재를 했습니다.

당신 남편이 평생을 아프대요. 평생을 아파. 특히 목을 어떤 올가미로 감아 잡아당기는 느낌을 받는 답니다. 병원에 가도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다섯 번째 천도재 때 이것은 분명히 지중한 죄업으로 인한, 혹은 지독한 원결로 인한 것이다 라고 판단을 해서 부처님과 함께 살폈어.


살펴보니까 그 남자가 과거 생에 조강지처 몰래 아주 예쁜 여자를 알았어(사랑했어). 몰래 작은 부인으로 두고 살아. 그런데 첫 부인(조강지처)이 그 사실을 알았어. 그러니 어떻게 됩니까? 이제 가정은 분란이 일어나지요. 

이 남자는 새로운 젊은 미인한테 쏙 빠져 버리니까 조강지처에 이미 정이 다해버렸어. 그래서 이 남자가 생각 생각 끝에 내가 큰 부인을 죽여야 되겠다 그거요. 죽이지 않으면 작은 부인과의 행복이 깨질 것 같아. 나는 작은 부인과의 행복을 깰 수가 없어.

그래서 그 남자가 저녁에 큰 부인하고 자면서 목을 조여 죽였습니다. 이 사실이 들통이 나면 자기는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받아야 되니까 위장(僞裝)을 했어요. 큰 부인이 광목천을 이용하여 대들보에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은 것처럼 위장을 했습니다.

 이것이 수사당국에 포착이 되어 가지고 살인죄로 입건되어 20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고 수감 생활을 하다가 옥사 했어. 옥사했는데 그 후 어떻게 되었나? 중지옥으로 갔어.


그 다음에 축생으로 빠졌어. 축생을 몇 번 돌다가 이번에 사람 몸을 받아 왔다고. 여러분, 지중한 죄업은 이렇게 거듭거듭 과보를 받습니다. 

그 사람이 지은 업에 따라서 5중으로 과보를 받기도 하고, 거듭 거듭 다섯 세계 그러니까 지옥․아귀․축생․무주고혼 이렇게 다섯으로 거듭 받기도 하고, 세 번으로 받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서 그러지요. 그 사람이 이제 인간의 몸으로 왔습니다.


그 당시 남편의 손에 의해서 목 졸려 죽은 큰 부인, 그렇게 죽으면 명부를 못 들어가지요. 여러분 아시죠? 그러니까 지금 현재 여러분들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이것은 어느 승려도 모릅니다. 

모르는 거요. 이 생사관이나, 인간 영혼의 실체나, 부처님이 존재하는가의 여부 등은 우리 현지사에서 정말로 완벽하게 역사이래로 처음 밝혀 내놨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자, 큰 부인이 무주고혼이 되었어. 그 억울한 천추의 한을 풀어야 되겠어. 그래서 기다린 거요. 남편이 사람 몸 받아 오기를 기다리는 거요. 한번 무주고혼이 되면 저기 명부에서 정리하지 않는 이상 100년이고 1000년이고 무주고혼으로 살아. 

여러분 그것을 알아야 돼. 남편이 이제 사람 몸 받아오니까 무주고혼인 큰 부인이 ‘아! 옳다. 됐다’ 해가지고 빙의가 되는 거요.


그래서 계속 할 수 있는데 까지 복수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지사 천도재 때문에 들통이 났지요. 들통이 났어. 

우리는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고 부처님이 관할(주관)하시는 천도재이기 때문에 그 큰 부인을 잡아서 명부에 집어넣으려고 하니까 그 큰 부인이 발버둥을 쳐. 내 이 억울함을 어디에서 보상 받을 것이냐 하면서 발버둥을 쳐.

그러나 명부로 압송을 시켰습니다. 그 사람은 과거 생의 큰 부인을 정말로 마땅히 하늘로 올려 줘야 될 거요. 하늘로 천도를 해줘서 그 무서운 원결을 풀어야 됩니다. 그리고 살인한 그 죄업, 지중한 죄업을 씻고 씻고 소멸해야 됩니다. 그 분은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죄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절대로 죄를 지어서는 안 돼요. 절대 죄를 지어서는 안 돼. 저 영계의 낱낱 소식을 잘 아는 스님으로서 이것을 말해 주어야 돼. 이것을 모르는 스님들은 지나가지 뭐. 

그냥 지나가지. 지옥, 이 단상(법좌)에 앉아서는 ‘죄짓지 마시오. 지옥 가오.’라고 말하지만 지옥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몰라. 법상에서 내려와서는 ‘지옥이 뭐가 있다고 그래. 뭐가 지옥이 있어. 

번민하는 그 자리가 지옥이고 고통이 떠난 자리가 극락이어’이렇게 말해 버리거든. 그렇기 때문에 성과를 얻은 이의 법문하고 틀립니다. 

정말로 천지현격으로 다릅니다. 여러분 그렇게 아십시오. 절대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절대 죄를 지으면 안 돼. 뿐만 아니라 국가의 법질서도 꼭 지켜야 되겠다 하는 것이어.



출처/2008. 9. 7. 토(음8.8)큰스님 춘천법문 내용중 발췌




모든 것은 업이 만듭니다. 인연으로 되는 것입니다./전생사례

 모든 것은 업이 만듭니다. 인연으로 되는 것입니다.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어떤 청년거사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부모는 몇 번의 조상님 천도재를 올렸지만 아드님의 시력엔 차도가 없었습니다.



물론 천도재는 돌아가신 조상 영가를 악도에서 하늘로 구원하는 일이지 복위자천도재 모시는 자손 당사자의 병고를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곳 현지사 천도재로 효를 다하는 복위자에게 부처님께서는 업장의 일부를 씻어주십니다.



금년에무자년 그 아드님은 자기 이름으로 조상 천도재를 올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드님의 눈병의 원인이 밝혀진 것입니다.



바로 전생에 한 여인20세쯤에게 독가루를 뿌려 시력을 잃게 한 악행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 후 여인은 스스로 자진합니다.



그 여인은 한이 맺혀 이 청년에게 복수하고자 수백 년을 무주고혼의 몸으로 기다렸다가 금생에 그 청년을 만나 몸속으로 빙의했습니다.

 

천도재를 지내기 위해서 남자는 절에 왔고 그에게 빙의되어 있던 여인 영가는 현지사에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에 일주문 밖에서 남자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불 세존께서 그 젊은 눈 먼 여인 영가를 향해 석장을 들고 빛을 쏘아 잡아 들여와서 법문해주셨습니다.

 

“이 청년이 독가루로 너의 눈을 망가뜨린 것은 바로 3생 전 네가 그 청년에게 몹쓸 짓을 한 때문이다. 네가 이제청년 몸 속에 빙의해 들어가 청년의 시력을 잃게 되면, 다시 다음 생에 인과응보로 네가 똑같이 또 당하게 되는 것 -



이제 한 쪽이 참아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네 억울한 처지를 알았으니 지장보살님과 열시왕에게 특별히 당부할 것이다. 그러니 이 청년 속에 쌓아둔 그 동안의 너의 살림짐과 청년의 눈에서 저주의 독기를 모두 뽑아 챙겨 명부의 길로 떠나라-.”

 

잡혀 가면 죽을 것으로 알았던 그 여인 영가무주고혼은 처음엔 억울하다며 발버둥치다 결국 부처님 말씀대로 저주했던 모든 악의 기氣를 거두어 지장보살을 따라 명부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청년이 시력을 회복하는 길은 불쌍한 여인 영가를 하늘로 천도해서 원결을 해소하고, 부처님께 선근공덕을 지어서 과거 생의 업장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  7장 우주의 절대자이신 부처님



조선시대 선조대왕 때 일어난 실화/전생 사례

 조선시대 선조대왕 때 일어난 실화



가끔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있는데, 조선시대 선조대왕 때 일어난 실화입니다. 선조대왕은 임진왜란(1592~1598년)이 일어났던 그 당시를 살았던 왕입니다. 선조대왕은 덕이 있는 대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서도 명군으로 기록됩니다. 상당히 덕이 있고, 지혜도 있는 명군으로 인정해 주는데, 그 당시 동인·서인이라고 하는 당쟁(黨爭)이 심한 때인지라 어진 정치를 펼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전라도 진도 군수로 발령을 받아 부임해 간 ‵이응′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외자이지요. 이분은 대단히 선정(善政)을 베풀었습니다. 어느 날 일본 선박 한 척이 조선의 수군에게 나포(拿捕)되었어요. 조선의 관리들이 그 선박 속의 일본 사람들을 묶어가지고 데려왔어요. 그런데 진도 관아의 아전들은 일본 선박 뱃사공들의 수괴(수장)를 죽이려고 해요. 이 사람만은 죽여야 된다 그거요. 말도 통하지 않고, 왜 우리나라에 왔느냐 그거요.



‘이건 필시 무슨 뜻이 있다. 스파이가 아니냐. 이 못된 놈들. 이 중에서 한 놈은 죽여야 된다’

하면서 참수(斬首)할 찰나입니다. 진도군수 ‵이응′이 그 사실을 보고 받고 곧 명령을 내렸어요.

‘절대로 참수하지 마라. 심한 풍랑이나 태풍을 만나가지고 불시에 기착했을 것이다. 죽이지 마라. 내가 지령한다.’

하고 명령했습니다. 그런 후에 오히려 10일 동안 융숭한 대접을 해서 일본으로 돌려보냈답니다. 진도군수 ‵이응′에게는 ‵창해′라고 하는 손자가 있었어요. ‵창해′는 머리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기골이 남자답고, 지혜 총명하고, 빼어난 용모를 갖추었답니다. 어느 날 ‵창해′라는 분이 제주도 목사로 발령을 받아 관속 20여명을 거느리고 부임하는 길에 태풍을 만나 조난을 당하여 ‵이 창해′등 관속 3사람만이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한참을 표류하다가 ‵지마도′라고 하는 일본 땅에 기착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일본 섬의 도주(島主, 섬을 다스리는 어른)앞에 끌려가 가지고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했지만, 도주가 볼 때는 죄인(스파이)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날 자기들처럼 한때 조난을 당하여 조선의 진도 땅으로 표류해서 그렇게 고생을 한 사람들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도주가 바로 진도군수 ‵이응′이 살려 보낸 일본 선박의 수장이었습니다. 그 도주가‘너희들 ‵이응′이라는 사람을 아느냐?’라고 묻더랍니다. ‵이응′이 누구죠? 진도군수로 살았던 ‵창해′의 할아버지이지요. 그러니까 ‵창해′라는 사람이‘우리 할아버지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도주는 너무도 반가워하며 융숭한 대접을 합니다. 그 창해라는 사람이 머리도 총명하고, 용모도 잘생기고, 남자답고 하니까 도주가 정을 붙입니다.



도주는 아들이 없고 딸만 하나 있었습니다. 가끔은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시키다가, 차츰 상당한 어느 직책을 맡겨봅니다. 맡기는 쪽쪽 착실하게 일을 잘 처리했답니다. 그러니까 도주의 눈에 들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창해′를 불러가지고‘우리 딸하고 네가 평생 가약을 맺고 살아라. 부부인연을 맺고 살아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는 적어도 300~400년 전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민주사회는 아니었습니다. 그 섬의 도주이면 그 섬에서는 완전히 삼권을 쥐고 있는 거요. 그런데 ‵이창해′는 그 당시 나이가 아마 30세 정도 되었습니다. 일찍이 12살 때 18살 처녀와 결혼해 가지고 살다가 19살 때 상처(喪妻)했어요. 일본여인들은 일반적으로 남편을 대단히 공경하고 예절이 분명해요.



‵이창해′는 도주의 딸과 결혼을 하여 사는데 이름도 성도 바꿉니다. ‵창해′는 놔두고 그 도주의 성을 따서 ‵모찌모또 창해′가 되었어요. 나중에는 도주가 모든 도의 정사(政事)를 ‵창해′한테 맡겨 버립니다. 그래서 30년을 삽니다. 슬하에는 아들 딸 12명의 자녀를 두었답니다. 그 중 큰아들 이름이   ‵의충′이었어요. ‵의충′은 자기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닮아가지고 도량이 넓고, 잘생기고, 아주 용맹스러웠어요.



이렇게 30년이 흘러갔습니다. 한편 고국에서는, ‵창해′어머니가 오씨인데 강원도 고성사람이어. 불교 신자였는데 관음 행자(관음 신자)였습니다. 자기 아들 제주 목사   ‵창해′일행이 바다를 건너다가 조난을 당했다는 비보를 듣고 실신했어요. 그래서 가까운 낙산사를 다니면서 아들 명복을 비는 것이 일과가 되고 습관이 되었답니다. 강원도 양양 낙산사는 지금도 유명한 곳이죠.



낙산사를 다니면서 아들이 조난당한 그날을 기일로 꼭 알고 해마다 천도재를 모십니다. 30년이 흘렀습니다. ‵창해′의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창해′의 어머니 곁에는 ‵남향′이라는 ‵창해′의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돌아가시면서 ‵남향′을 불러놓고 유언을 하기를‘너의 형이 떠난 날(조난당한 날)이 아무 달 아무 날이니까 이날만은 반드시 낙산사에 가서 천도를 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창해′의 어머니가 신심이 있는 분이었어요.



고국에서는 그랬고, 일본에서의 창해는 이제 아들도 그렇게 많이 낳았고, 또 자기 아들이 대단히 남자답고 지성스럽고 일처리도 잘하기 때문에 모든 정사를 아들한테 물려주었습니다. ‵창해′가 하는 것이라고는 날마다 낚시질이나 하면서 소일 했답니다. 하루는 바다에 나가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일진광풍이 일더니 무서운 파도가 ‵창해′의 낚시 배를 휘몰아 이끌고 어디로 달려가 버렸습니다. 어디에 도착했느냐하면 강원도 통천에 도착했답니다. 기절을 했다가 깨어나 눈을 떠보니까 조선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어요. 고국의 사람들이어요. 낯익은 땅이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이 얼마나 먼 바다 거리입니까. 자기가 승선했던 배는 낚시 배였는데 옷만 좀 적셨더라 그거요. 정신을 수습해서 물어보니까 강원도 통천이라는 거요. 그렇다면 낙산사가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도 낙산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또 자기 있는 곳에서 가까우니까‘낙산사를 한번 구경해 보자. 가서 부처님께 기도나 올리자’하며 낙산사에 가서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기 동생을 만납니다.



그날이 자기가 조난당했던 날인지 동생 ‵남향′이 천도재를 마치고 귀가하는 중이었고, 형 ‵창해′도 낙산사에서 기도를 마치고 낙사사를 구경하면서 나오는 중이었는데 뜻밖에 동생을 만났어. 마주쳤는데 30~40년의 세월이 흐르다가 보니 동생(남향)이 형(창해)을 못 알아 봤습니다. 그런데 일본 복장을 한 남자가 지나가니까 동생이‘참 묘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다가가 묻습니다.



‘당신 일본 사람이오, 조선사람이오’라고 하니까 ‵창해′가‘사실 나는 조선 사람입니다.’‵남향′이‘그러면 당신이 혹시 ‵창해′가 아닙니까’라고 물었어. 30~40년 흘렀다고 해도 동생을 몰라보겠습니까? 알 수 있지요. 그래가지고 서로를 알아보고‘아이구 형님!’하면서 붙들고 뒹굴고 얼싸안고 울었다는 거요. 고국에 계시는 부모와 조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통곡을 했답니다. 이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이렇게 인과는 분명한 것입니다. 표류하던 일본인 도주(島主)에 대하여 자기 할아버지가 따뜻하고 융숭하게 대접해서 돌려보냈기 때문에 손자인 ‵창해′도 뜻밖의 태풍으로 인한 조난을 당해가지고 일본 지마도 땅에서 그 도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도주의 사위가 되고 한 그 결과는 인과의 선인선과인 것입니다. 인연의 도리인 거요. 왜 하필 조선 땅으로 태풍이 몰아쳐 버렸어. 인연의 도리인 거요.


내가 전생에 사람을 죽였다? 반드시 죽입니다. 눈을 떠서 보니까 반드시 인과가 있어요. 붓다까지 올라가서 보니까 . 이 법계의 주인은 없어. 그러나 다만 부처님은 계셔. 왜? 부처님은 본래 중생으로 해서 수행을 했거든요. 여러분들도 모두 다 붓다가 될 수 있습니다.

출처/2009. 02. 17. 화(음1.23) 큰스님 부산 법문 中 발췌

2022년 8월 18일 목요일

각박한 세상 부처님 법과 가르침을 실천해 세상을 감동시킨 환경미화원ㅣ 단월들의 신심나는 이야기

부처님 계심을 믿으니 생긴 희유한 세가지 가피ㅣ 단월들의 신심나는 이야기

정법에서본 김시습

 정법에서본 김시습

 

 

 

지난 시간에는 외도의 본성 성격을 알려주기 위해서 정북창(鄭北窓)이라고 하는 이인(異人도인(道人)을 소개했습니다.

 

오늘 여러분한테 소개해 드릴 분이 있습니다아시는 분은 아실 거예요. ‘매월당(梅月堂)’하면 아시죠? '김시습(金時習)'입니다.

김시습(金時習) : 1435(세종 17) 한성~ 1493(성종 24) 충청 홍산조선 초기의 문인 본관은 강릉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등이며 법호는 설잠(雪岑)이다신라 알지왕의 후예인 원성왕(元聖王)의 동생 주원(周元)의 후손이다무반 계통으로 충순위(忠順衛)를 지낸 김일성(金日省)의 아들이다출처위키백과

 

이 분이 중()도 되고 또 속인이 되고다시 중()도 되고 했는데이분의 중(이름은 설잠(雪岑)입니다그런데 아호(별호)가 10여 개나 됩니다이씨조선 조선조 세종대왕 때부터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까지 여섯 대왕을 살은 유명한 분입니다오늘 내가 왜 이분을 여러분한테 소개해 드리고 싶냐 하면이 분은 한국이 낳은 천재입니다한국이 낳은 신동(神童)입니다.

 

매월당(설잠김시습을 한국역사상 첫 번째 꼽을 거예요그렇기 때문에 이분의 일대기 행장(行狀)에 대해서 여러분한테 말씀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이분이 맨 처음 '금오신화(金鰲新話)'라는 한문소설을 썼습니다이 '금오신화(金鰲新話)'의 내용을 보면 이분의 사상이 나오기 때문에우리 정법의 입장에서 불자의 입장에서 한번 이분의 모든 것을 훑어 봐야 되겠다여러분들한테 소개를 해줘야 되겠다 하는 것입니다여러 가지 배울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매월당 김시습 설잠 비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이분은 태어난 지 여덟달 만에 글자를 알았고세 살 때 이미 한시(漢詩)를 지었습니다여러분한시를 짓기 어렵습니다한시는 대단히 어렵습니다그런데 세 살 때 이미 한시를 지었고다섯 살 때 벌써 대학(大學)을 통달했습니다다섯 살 때 사사삼경(四書三經)을 봤어요이 사람은 신동입니다신동으로 온 그 이유가 있어요.

 

그 당시 이웃에 살던 좌의정을 지낸지금 같으면 부총리에 상당하는 벼슬이지요그 당시 봉건사회에서의 좌의정이면 지금의 부총리보다도 그 권세가 정말로 무섭습니다좌의정 정도 되면 참 뭐... 어마어마 합니다지금의 대통령보다도 훨씬 무섭습니다매월당의 이웃집에 좌의정 '경함'이라는 분이 있었는데애기가 아주 신동이라는 소문을 이미 들어 잘 아는지라 하루는 '시습'이를 불러서

꼬마야이 늙은이를 위해서 시 한 구절을 좀 지어다오그 대신 늙을 노()자를 넣어서 한번 지어 보거라.’ 그랬어.

늙을 노()자를 넣어가지고 지어 달라고 하니까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즉석에서 나오는데여러분 외워 두세요.

노목개화심불로(老木開花心不老)’라고 했습니다.

노목(老木), 늙은 나무가경함 좌의정이 늙었지요늙은 나무로 비유했어늙은 나무가()자를 넣으라고 했는데 앞에다가 딱 넣었잖아요.

개화(開花), 꽃이 피니심불로(心不老), 마음은 늙지 않았네마음만은 늙지 않았단다이거 참 기가 막힌 말이지요.

 

다섯 살 때 이 정도로 총명했다고요지금 여러분에게 지으라고 하면 어려울 걸요너무도 유명한 분이어당대 최고의 지식인입니다이분의 일생을 알아야 돼앞으로 여러분한테 많이 소개를 할게요스님이 좀 알고 있는데여러분이 정법의 입장에서 이것을 훑어볼 줄 알아야 됩니다그냥 넘어가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분은 지조가 있는 분이고대쪽같은 성격이었어요그래서 세종대왕하고 단종을 굉장히 사모했습니다세종대왕이 소문을 듣고 김시습을 알았어요그래서 과거를 보도록 해서 크게 써먹으려고 했어요그런데 이 사람이 전생에 지은 복은 적고 한평생 그냥 중()으로 방랑생활 하면서 끝납니다()도 청정한 중()이 아니고()이 되었다가 나갔다가 되었다가 나갔다가 했거든요이 사람의 일생을 다 말할 수는 없고여러분이 꼭 알아둘만한 아주 중요한 대목이 있습니다그런 정도는 알아두시라고요.

 

단종이 그냥 결단을 내려버렸거든요수양대군한테 선위(禪位임금의 자리를 물려줌)한다고 선포해버렸습니다수양대군이 보위(寶位)를 탐하며 왕위를 접수하려는 욕심이 하늘을 찌르니까 선위한다고 해버렸습니다선위라는 것은 이 자리를 물려준다는 말이어요단종이 수양대군을 무서워하거든요그러나 집현전에 여러 학자들이 있었지요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이런 학자 분들인데이들은 선비로서의 지조도 아주 대단하고 총명한 분들이었습니다그런 분들이 선위를 한다는 단종의 말에 대해서 이해도 할 수 없고받아들일 수도 없었어요. ‘이건 반드시 강압에 의해서타의에 의해서 이런 엄청난 선언을 했다’ 해가지고 성삼문 등이 그것을 번복시키려고 한 거예요.

 

그래서 수양대군이 성삼문 등 여섯 명을 죽입니다그 수양대군을 결정적으로 도와준 분이 누구지요칠삭동이 한명회(韓明澮)입니다한명회그래서 성삼문 같은 충신들을 죽이는 것을 보고 벼슬살이를 포기한 거예요그 광란(狂亂)의 살인극을 보고 벼슬살이를 포기하고 미친 사람처럼 팔도를 방랑하기 시작한 거예요김시습이가 말입니다.

 

그런데 성삼문 등이 형장(刑場)에 가가지고 피비린내 나는 고문을 당하면서 참수(斬首)당하잖아요참수당할 때 성삼문이나 이개 하위지 같은 분들이 정말로 무섭게 그 지조를 굽히지 않았어요여러분도 정말로 한번 읽을만하고 봐야 됩니다지조를 꺾지 않았어요그 불로 달구어가지고 쇠꼬챙이로 마구 찌르고 지지는데 이 쇠꼬챙이가 다 식었다다시 달구어 가지고 지져라라며 세조를 노려보면서 이런 식으로 나온다고아주 무서운 사람들인데이제 머리가 다 잘렸잖아요머리가 잘린 그 형장을 아주 삼엄하게 지켰다고저녁 내내 지켰어요.

 

그런데도 시습이가 큰 자루 하나를 가지고 한밤중 1시 2시경에 그 형장으로 간 거예요그 형장에 가니까 병졸들은 술에 취해가지고 다 곯아 떨어져 있었습니다그 틈을 틈타서 참수당한 여섯 개의 머리를 자루에다가 담은 거예요담아가지고 도망을 갔습니다지금의 노량진 백사장에 짊어지고 가서 곱게 묻어주었답니다시습이가 그런 사람이어요.

 

그리고서 전국을 방랑하는데서울이 고향이니까 가끔 서울에 나타나곤 했습니다어느 날 큰길 장터에서 누더기를 걸친 설잠 화상(雪岑 和尙)그 때의 누더기는 지금의 스님들이 걸치는 누더기와 다르지누더기가 정말 거러지 같아그 누더기를 걸친 설잠(雪岑), 김시습입니다그 중의 이름이 설잠(雪岑)입니다.

 

마침 그 때 큰 양반의 행차가 지나가게 되었습니다여러분알지요행차가 지나가면 딱 멈춘단 말이에요양반 행차가 지나가는데 그 스님이 딱 멈추면서 거정아오랜만이구나!’ 그런단 말이에요거기에는 거정이가 타고 있었어좌천성이에요지금 같으면 급수가 아마 차관 밑의 정도인데어마어마했어요.

 

여하튼 지금의 차관 같은 정도의 벼슬은 권한이 별것 아니잖아요지금은 민주국가라서 삼권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데옛날에는 어마어마 했어그런데 ‘‘거정아오랜만이구나!’ 하니까 가마에 타고 있던 거정이가 가다가 보니까 설잠(雪岑)이거든알아친구여기가 막힌 신동이어그런데 거지같은 꼬락서니가 되어가지고 자기의 행차를 막거든그러니까 어쩔 거요?

 

열경(悅卿)! 오랜만일세시간 있으면 우리 집에 들리게!’라고 말했어요그러면서 이제 그 행차는 지나갔습니다그 날인가 그 이튿날인가 서울의 대원각사에서 큰 법회가 있는데 설잠 화상을 법사로 초대했단 말이에요그 절이 탑동에 있었다고 그래요그 법회에 설잠이가 법문을 한다고 하니까세조 대왕이 설잠을 알거든요대단한 지식인으로 알고 있어요세조 대왕이 대원각사를 왔어요.

 

그것을 보고 법문할 스님인 설잠이가 도망 가버렸어자취를 감춰 버렸어자취를 감춰버리니까 원각사에서는 야단났지요세조 대왕은 왔고 법사가 없어져 버렸으니까 말입니다그때의 그 원각사에는 수 십 명의 스님들이 있었다고 그래그러니까 그냥 스님들이 전부 흩어져가지고 샅샅이 뒤지는데여러분김시습이를 잘 아시는 분어디로 갔는지 압니까똥통에 빠졌었어.

 

더러운 놈들이 왔다고 일부러 빠진 거예요어제는 거정이를 만나더니 오늘은 또 세조라는 역적을 만났다고 해가지고더러운 놈을 만났다 해가지고 똥통에 들어가 있었어요똥통에 빠져 있단 말이야. ‘설잠 화상이 똥통에 빠졌다설잠 화상이 똥통에 빠져 있다~!!’해서 고함을 지르니까 다 알아버렸지세조 대왕도 알아버렸어그러나 그 무서운 세조도 설잠이 현재의 집권층을 갖다가 똥같이 보는 것을 알았지요알고서 불쾌하게 생각했지만 탓하질 않았답니다그 때부터 이제 세조도 많이 참회하고,나중에는 참회했잖아요 그래서 불교에 귀의했잖아요세조가 탓하지를 않았어.

 

김시습이 어느 강변에 있는 정자에 들렀는데그 정자에 시가 한 수 적혀 걸려있었어요그 시를 보니까 한명회가 지은 시예요그 죽일 놈 한명회가 지은 시라김시습으로서는 그러지무슨 글귀냐?

청춘부사직(靑春扶社稷)하고.

청춘젊었을 때에는 그 말이어사직(社稷), 나라를 사직(社稷)이라고 그래나라를 붙들어 세웠고()붙들어 세웠고.

백수와강호(白首臥江湖).

흰머리가 나가지고 늙어서는 강호에 드러누웠네.

이제 유유자적 하는 거예요이런 내용의 시였어요이런 시를 보고는 글자 둘을 싹 고쳐 써가지고 붙여버렸어()자는 무슨 자로 바꾸었느냐 하면 망할 망()자여.

그러니 청춘망사직(靑春亡社稷)하고-젊어서는 나라를 망쳐 먹은 놈이되고망쳐버린 놈이고

 

백수와강호(白首臥江湖)-늙어가지고는 강호에 드러누웠네 했는데누울 와()자 대신에 더럽힐 오()자가 있어이 오()자를 넣으니

백수오강호(白首汚江湖)-늙어가지고는 강호를 더럽히네이렇게 바꿔치기 해버린 거예요이런 사건이라든지 등등 많이 있습니다.

 

이 김시습(金時習)이 한 6년 동안에 금오산(金鰲山경주 남산에 있음)에 들어가 칩거하면서 쓴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이 금오신화(金鰲新話)입니다여러분 아실 거예요()자는 자라 오()자입니다자라거북이 비슷하게 생긴 것으로 민물에 사는 자라 있지요()은 쇠금(), 금은 할 때의 금(). 금자라신화(新話)는 새로울 신()말할 화()자예요.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썼는데그 금오신화(金鰲新話)는 상하권으로 되어있습니다이 책이 너무나 유명해가지고 이것을 봐야 김시습의 사상을 알 수 있어요여러 작품들이 있는데그 목판본이 일본 동경에 있답니다일본에 있고 우리나라에는 없어요금오신화(金鰲新話)는 이 작자의 생애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김시습의 일생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김시습은 학문적인 능력이 탁월했잖아요그러나 과거(科擧)를 마다했습니다과거를 봤으면 정말로 일찍이 장원급제를 해버렸지요장원급제 했겠지만 그것을 마다했습니다학문적인 무서운 능력이 탁월하면서도 그 당시 정치 경제의 기반이 취약한 15세기 때이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500년 전 이야기입니다이제 김시습은 15세기 후반의 신흥사류(新興士類)로서 새로운 선비계열이지요.

 

김시습은 당시 정치 현실과의 심각한 갈등 속에서 극히 불우하고 고독한 생애를 보냈는데금오신화(金鰲新話)는 그런 자신의 사상이 반영된자서전적인 성격이 농후한 글입니다금오신화(金鰲新話)는 그 필법이 너무도 기가 막히게 참 잘도 글을 썼습니다필법(어법)이 아주 천재적이어서 김시습의 글쓰기 방법의 사상적 근거 연구라고 해가지고 14년 전에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을 쓴 사람이 있어요.

 

그만큼 작품을 평가합니다당시 이성계삼봉 정도전 등등 조선왕조의 건설자들은 주자학을 새로운 지도 이념으로 채택해가지고 새로운 왕조의 지배질서를 확립하려고 했잖아요그런데 이제는 새 왕조의 사회적 폐단이나 이념적 모순을 비판하면서 민중의 처지에 동조하는 일련의 소외된 지식인들이 등장하는데 이들 중 대표적인 사람으로서 김시습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이치 이(), ()를 만물의 본질로 보는 주자학의 주리론(主理論)이 지배체제를 합리화하기 위한 명분론으로 보고 그것을 공격하면서 기()를 만물의 본질로 하는힌두교에서는 프라크리티(prakrti)라고 하지()를 만물의 본질로 보는 이기(理氣이원론적곧 주기론(主氣論)이라는 철학사상을 수립해서 이에 입각해서 만물을 객관적 합리적으로 인식하고자 했다이것은 조금 어려운 이야기인데이건 놔두겠습니다.

 

금오신화를 보면 귀신이 나오고 염왕이 나오고 용궁이 나오고 용왕이 나옵니다이것은 그때도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았고지금도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잖아요보니까 김시습도 귀신이라든지 염왕이라든지 용궁이라든지 용왕이라든지 하는 것을 신비주의적 미신적으로 부정해버렸어요.

 

그러니까 김시습 같은 그런 천재가 내가 볼 때에는 그렇게 처신하지 말고차라리 머리 깎고 중이 되어버렸으면 진짜 중이 되어 근본을 뚫어버렸으면그의 기철학(氣哲學기이론(氣理論)도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저기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주장한 분이 장횡거(장재(張載: 1020~1077)는 중국 송나라 시대의 사상가이다성리학의 기초를 닦았다자는 자후(子厚)이다봉상미현의 횡거진(橫渠鎭)에서 오래 머물고 후학을 가르쳤기 때문에 횡거 선생(橫渠先生)이라고 호칭된다저술로는 정몽(正蒙)’이 있고 존칭하여 장자(張子)라고 불린다위키백과)인데북송 당시 장횡거라는 철학자가 이제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세상에 내놓고우리 이씨조선에서는 초기 화담(花潭서경덕(徐敬德)씨가 그것을 승계한 거예요.

 

그런데 기일원론이라고 하는 이런 주장이나 주기론이라고 하는 이런 철학사상이 과연 진리입니까진리로 보기에는김시습은 그랬을는지 몰라도 저기 봅시다주자(朱子주희 朱喜)는 이기(理氣)이원론입니다그러면서도 철저히 주리론(主理論)이지요그 주자학의 사상이 고려 말쯤에 우리 쪽으로 들어오는데 이를 집대성한 학자가 이퇴계(李退溪이황 李滉)지요.

 

이황이 그 사상을 그대로 수용한 거예요그도 이기(理氣)이원론자였습니다그 송대(宋代)의 그런 이기설(理氣說)이 성리학이 되어가지고 우리 이씨왕조의 지도 이념으로까지 원용되어서 서로 싸우고 했는데이율곡(李栗谷)은 또 이()와 기()의 일원론(一元論)을 이야기했거든그러니까 조선왕조에서는 이()()다 하고 많이 싸웠어요.

 

그러면 여기서 이보다도 더 깊고 멀리 보고 넓게 본 철학사상이 있는데힌두교에서 이야기하는 베단타학파라든지 상키아학파라든지 바이셰시카학파라든지 미맘사학파라든지...많이 나오잖아요또 불교에서도 본체와 연기(緣起)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우주창조라든지 우주의 운동우주에서의 생명창시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들입니다이번에 우리 영산불교에서 앞으로 깊은 철학사상을 내놓게 되는데조금 전에 말한 이걸 전부 쭈~욱보니까 맞는 말이 있고 일리는 있지만 그 것이 절대 진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그 보다도 훨씬 우수한 영산불교의 철학사상이 나올 것입니다.

 

어쨌든 금오신화(金鰲新話)를 보면 이를 쓴 설잠(雪岑매월당(梅月堂김시습의 공부 깊이를 알만 해요이 귀신 염왕 용궁 용왕을 비현실적이고 미신적인 것으로 봤습니다그 금오신화(金鰲新話)는 주인공과 이 세계의 대결을 더욱 날카롭게 부각시켜가지고 문제의식을 부여할려고 하는데 이는 김시습의 사상사회관 종교관 인간관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거예요그리고 옛날에는 모든 작품들이(소설이다 하나같이 끝에 가면 해피엔딩으로 끝나잖아요.

 

그런데 이 소설 속에는 한 다섯 편 있는데 주인공들이 모두 세상을 등지는 것으로 끝나요그래서 이것은 자기의 생애와 밀접하게 관련된앞에서 말씀드린 바대로 자서전적인 성격이 농후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을 야유하며 자신을 학대하면서 스님으로 살아가던 김시습이 47살 되던 해그러니까 성종12년에 다시 내려와 가지고 홀연히 머리를 기르고 고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윤씨 부인을 맞이해서 가정을 꾸렸어요그러나 모처럼의 가정생활도 얼마 후에 윤씨 부인이 세상을 떠나버렸기 때문에 다시 또 산에 들어가게 됩니다.

 

산에 들어가기 전인 성종 13년에 또 이런 일이 있었어요연산군의 생모가 사약을 받아서 죽잖아요이것을 보고 김시습은 또다시 세상만사를 허무하고 혐오스러워 해서 방랑길에 나섭니다그러다가 다시 산에 들어와서 59살 때 충청도 홍산 무량사지금의 부여이지요그 무량사에서 열반에 들었습니다여러분 가보셨는지 몰라무량사를 가면 김시습의 부도가 있을 거예요.

 

너무나도 풍진이 많았던 한평생화장을 하지 말라는 유언대로 시신을 절 근처에 묻었는데, 3년 후에 장사를 지내려고 관을 열어보니까 시신이 썩지를 않고 얼굴도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평온해 보였다고 합니다그리해서 그를 알아보는 신도분들이나 스님들이 설잠이분은 부처를 이루었다’ 한 거예요그러나 이것은 말도 안 됩니다.

설잠 김시습(雪岑 金時習)을 소개한 것은 사성제 팔정도 중도사상 칭명염불 육바라밀 보현행원으로 이어지는 덕목들이 진정한 불교정법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원래 중생계는 탐진치 놀음이어요중생계는 요지경 속이어이 정도의 천재이고이 정도의 철학이 있는 분이고기왕에 머리를 깎았으면 자기구제를 먼저하고 남을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하는 삶을 살았어야 되는데이 세상의 그릇된 질서에 분통만을 터뜨리고 그렇게 갔습니다.

 

나는 다시 말씀드리지만 한번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으면우선 우주자연과 인생의 근본근본 자리를 파헤치고그런 후에 수행을 두타행을 잘 해가지고 도를 먼저 이루고그 다음에 성자가 되어서 구세(救世)하는 그런 수순을 밟았어야 되는데이 세상의 그 부조리하고 도저히 분통이 터져서 볼 수 없는 이 세태만을 한탄하고 전국을 방랑하면서 세상을 비웃고사람들을 또 짐승같이 폄하하고 비방하고 이렇게 살 것이 뭐냐이 나라 역사상에 일찍이 없었던 천재 신동이죠.

 

이분이 또 40대에 쓴 것이 하나 있습니다중국 화엄종의 4대 조사인 청량 징관청량 징관이 쓴 9권의 화엄 현담(玄談)’, 화엄사상을 주석했습니다이 현담 주석서도 실력이 보통 아니면 못 쓰는 거예요화엄사상을 완전히 꿰어야 현담을 주석할 수 있는데이분이 쓴 현담 주석이 하나 있어요대단한 분입니다.

 

정말로 아까운 분인데이분은 정법이 무엇인지 몰랐어요몰랐으면 차선으로라도 기존의 부처님 말씀을 정리해가지고 사람들아나쁘고 악하게 살지 말라착하게 살아라!’하는 메시지를 전할 일이지기껏 금오신화(金鰲新話하나를 내놨단 말이에요금오신화(金鰲新話)를 내놨지만그것도 수행의 입장에서 볼 때 사실 평가할만한 것은 없습니다내가 보니까 전생이 선비로 살다가 스님 생활을 깨끗이 했어요.

 

막바로 왔습니다그래서 이렇게 신동(神童), 천재(天才)로서 한 삶을 살았는데 복을 지은 것이 없어그러니까 과거(科擧)에 급제할 운이 없어복을 지은 것이 없어요이분은 정법을 연설한 적도 없고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구세의 그런 보살행을 한 적이 없어요그러나 다행히도 큰 허물은 짓지 않았고 비교적 깨끗하고 선비같이 살다가 간 것은 평가합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설잠 화상(雪岑 和尙)을 여러분한테 소개를 하는데 왜 그러느냐내가 왜 소개를 하느냐역사적인 인물들을 여러분한테 앉혀 놓고 그들을 좀 지혜롭게 봤으면 싶고그러므로서 여러분들이 지혜롭게 내 자신과 과거를 되돌아보고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 하는 신념을철학을 세워주었으면 해서 여러분한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부처님을 믿는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게 정법입니다이게 정법이오여러분은 그렇게 살아야 된다고요그러니까 나는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달라 그거예요외도로 가지 말라 그거예요.

 

외도로 가지 말라외도로 가면 앞에서 내가 결론을 말씀드린 것처럼 미래가 없으니까요미래가 없지요외도의 수장도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전번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없어요우리 정법의 세계는 영원히 살 수 있는 곳이어요그렇지만 외도의 세계는 수장이라 하더라도 영원히 살 수 없다 그래요다만영원히 멸도 할 수 없는 자리는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는 길이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제발 정법 문중으로 들어오고수행 잘 하고금생이 얼마 남았는지 몰라도 관 속에 들어갈 때까지 보람 있게 살아 달라고그래서 여러분이 딱 돌아가신 후에는 평가를 하는 거예요평가를 해그러니까 점수를 받으라고점수를 받으라 그거예요그렇게 살아주었으면 좋겠어요점수를 받아야지 점수가 안 나오면 다음 생이 없어다음 생이 없습니다.

 

 

 출처/현지사 자재 만현 큰스님 춘천 본원 2011.12.04.일 정기법문중 발췌